[주목! 이 작품] 박대성의 ‘청량산 묵강’
경북 봉화 청량산은 장인봉을 비롯한 12개 고봉이 절경을 이뤄 ‘소금강’으로 불린다. 명산답게 신라 이래 숱한 선현들이 수도처로 삼아왔다. 원효가 세운 내청량사와 외청량사, 신라 명필 김생이 글씨를 공부하던 김생굴, 최치원이 수도한 고운대와 독서대, 퇴계 이황이 학문을 연구하던 청량정사 등이 산세와 어울려 품위를 더한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2층 전시실을 수놓은 한국화 대가 박대성(67) 작가의 <청량산 묵강>은 산의 범상치 않은 기상을 한지 위에 먹으로 담아낸 큰 그림이다. 명필 김생의 탄생 1300주년을 맞아 지난달 31일부터 열리고 있는 특별전 ‘문도-김생과 권창륜·박대성의 1300년 대화’의 대표작으로 내걸렸다. 가로 3m, 세로 5m 크기의 이 대작에는 청량산 12개 봉우리를 배경으로 김생이 살았던 김생굴과 그가 쉼 없이 쓴 글씨로 먹물이 스며들었다는 ‘묵강’(墨江), 붓을 닮았다는 ‘필봉’(筆峰) 등 천년 전 한국 서예의 법통을 세운 ‘해동서성’(海東書聖: 바다 동쪽의 글씨 명인)의 얼이 되살아났다. 먹을 들이부은 듯한 봉우리는 강직한 붓끝에 벼리어 기상이 늠름하다. 골을 누비는 강은 여백으로 비워내어 오히려 넉넉하다. 흑백 대비가 자연스럽고 구상과 비구상이 넘나들면서 현대적인 감각과 전통화의 검박함이 어울린다. 농담의 교묘한 뒤섞임으로 묵이 품은 오색도 은은하게 살아난다.
박 작가는 한나절 만에 일필휘지로 그렸다고 했다. “전시회 이틀 전 예술의전당 이동국 학예사가 전화를 했어요. ‘먹기운이 흥건하게 넘치는 작품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몸속에 꿈틀거리는 기운을 느껴 마치 초서 쓰듯 순식간에 그렸습니다.”
그는 “그리면서 손의 떨림과 함께 감흥 같은 것이 순식간에 나오더라”고 했다. “김생의 글씨를 수없이 임서(본떠서 씀)하면서 터득했던 ‘서화는 한몸’이란 것을 절감했어요. 김생의 글씨에 이미 그림이 들어 있었습니다.”
미술평론가 윤범모 가천대 교수는 “청량산이 지닌 특징과 충일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오랜 서예 연마로 터득한 필획이 형상의 유무와 경계를 자유자재로 흩뜨리며 작품으로 구현되었다”고 평했다. 전시에는 박 작가의 <청량산 필봉>, <화엄불국> 등 필묵이 생동하는 다른 대작과 글씨들도 같이 볼 수 있다. 또 <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명>, <송하빈객귀월> 등 현전하는 김생 글씨들의 미학을 재해석한 서예가 권창륜(69)씨의 작품들도 내걸렸다. 29일까지. (02)580-1660.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
도판 사진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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