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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면봉’만하게 보였던 레이디 가가

등록 2012-05-01 15:24수정 2012-05-01 20:37

레이디 가가 ‘더 본 디스 웨이 볼 투어’
레이디 가가 ‘더 본 디스 웨이 볼 투어’
서정민의 음악다방 레이디 가가 ‘18금 공연’을 보고
10만명 공연장도 이것보단 잘 보였다
지난달 27일 열린 레이디 가가 내한공연을 보고 쓴 기사(▷ 레이디 가가 “이게 18금 공연이다”)는 일반적인 공연 후기와는 성격이 좀 달랐다. 신문 문화면의 공연 후기 기사와 사회면의 사회적 논란 기사가 접목된 형태랄까. 모든 것이 서로 통하고 벽을 넘나든다는 ‘통섭의 시대’에 걸맞는 기사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싶진 않다. 문화예술을 문화예술로 즐기는 대신 근엄한 도덕과 종교의 잣대를 들이대는 우리 사회의 과도한 엄숙주의가 낳은 돌연변이인 것만 같아, 한동안 씁쓸한 뒷맛이 가시지 않았다.

기대대로 레이디 가가는 거침이 없었다. ‘더 본 디스 웨이 볼 투어’에 청소년 금지 딱지를 붙인 유일한 나라인 한국에서 그는 “한국 정부가 내 공연을 18살 이상만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 공연이 어떤 건지 확실히 보여주겠다!”라고 ‘똥침’을 날렸다. 하지만 말만 그랬지, 무대에 피칠갑을 하거나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흉내내는 퍼포먼스를 한 건 아니었다. 그날 퍼포먼스의 수위만 놓고 보면, 국내 아이돌 그룹들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 정도를 갖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나 하는 허탈감마저 들었다.

사실 공연장 밖에서 벌어진 광경이 더 유별나다면 유별났다. 사회부 후배 기자 얘기를 들어보니,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은 성경 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은 유대인들이 적의 근거지인 여리고성을 일곱바퀴 돌아 무너뜨렸다는 대목을 따라하며 공연장 주변을 돌았다고 한다. 일종의 퍼포먼스인 셈인데, 나는 이 또한 존중받아야 할 행위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누구나 퍼포먼스로 의사를 표현할 자유를 갖는다. 다만 자기 생각은 옳고 이날 공연을 즐기러 온 다른 이들의 생각은 옳지 않다고 무조건 강변하는 행위가 신의 뜻에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신은 그런 분이 아니다.

레이디 가가 ‘더 본 디스 웨이 볼 투어’
레이디 가가 ‘더 본 디스 웨이 볼 투어’
이제 좀 다른 얘기도 해보자. 공연장 환경에 대한 얘기다. 레이디 가가 공연 장소는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이었다. 중세시대 성을 형상화한 거대한 무대 세트를 설치해야 하는데다, 높은 출연료를 보전할 만큼의 티켓 매출을 위해 5만석 규모의 공연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터다. 그러나 타원형의 주경기장을 가로가 아니라 무대와 맨끝 객석의 거리를 극대화하는 세로 형태로 활용해야만 했는지는 의문이 든다.

나는 그날 무대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반대편 1층 객석에 앉았다. 그런데도 무대 위 레이디 가가는 면봉의 하얀 솜만하게 보였다. 저 위 꼭대기층에 앉은 관객들은 오죽했을까? 트위터에선 ‘면봉 가가’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무대 양 옆에 설치한 대형화면도 크기가 넉넉지 않아 갈증을 풀어주지 못했다. 퍼포먼스가 제대로 안 보이니 레이디 가가가 전하고자 한 감흥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저 아래 그라운드의 스탠딩석 관객들이 공연을 즐기는 현장을 멀찍이서 엿본 구경꾼의 기분이랄까.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일본에서 10만명 규모 공연을 볼 때도 이것보다는 잘 보였다”고 했다. 나도 5만석 규모의 일본 도쿄돔에서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이보다 훨씬 더 생생했다. 세계적인 팝스타들이 앞다퉈 한국을 찾고 케이팝 가수들은 세계로 뻗어가는 요즘, 이제 우리도 대중음악 공연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전문 공연장과 복합 문화공간을 가질 때가 된 듯싶다. 다음에 레이디 가가가 또 온다면 그땐 나도 흠뻑 빠져서 즐기고 싶다.

서정민 대중문화팀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현대카드 트위터 갈무리

[관련기사]

▷ 레이디 가가 “이게 18금 공연이다”
▷ 찢어진 현수막에 “하나님이 강한 바람 일으켜서…”
▷ 레이디 가가 ‘18금’ 노랫말에 ‘술’ 포함된 1곡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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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디 가가 ‘19금’? 당신들이 더 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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