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박정자씨가 지난 4일 서울 안국동 갤러리 아트링크 안뜰에서 가수 최백호씨의 ‘낭만에 대하여’를 부르고 있다. 공연기획사 림-에이엠시(AMC) 제공
50년 연극 인생 기념 전시회
박정자 직접 도슨트로 나서
저녁 6시 되면 ‘작은 콘서트’
김성녀 등과 ‘맥베스’ 낭독도
박정자 직접 도슨트로 나서
저녁 6시 되면 ‘작은 콘서트’
김성녀 등과 ‘맥베스’ 낭독도
“(기운 자국이 선명한 무대 의상을 들어 보이며) 낡았죠? 전 이런 게 좋아요. 이런 것들이 배우가 하는 전시에 어울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편지 한 통을 보여주며) 아, 이건 손숙씨가 손수 써서 이번에 보내준 편지예요.”
‘박정자전’에 가면 ‘도슨트 박정자’를 만날 수 있다. 자신의 50년 연극 인생을 기념하는 전시장에서 배우 박정자(70)씨는 관객들에게 사진, 연극 소품, 의상, 자료집 석고 마스크 등 100여점의 전시품과 그에 얽힌 사연을 소개했다. 약간은 들뜬 모습이었다. 무대 위 고압적이고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던 그였지만, 전시장에선 오월보다 더 해사한 미소로 관객을 맞고 있었다.
전시 첫날인 지난 4일, 서울 안국동 갤러리 아트링크를 찾았다. 단발머리 여고생 박정자가 수줍게 미소 짓는 오래된 흑백사진부터 <대머리 여가수>,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19 그리고 80> 등 50년 동안 차곡차곡 쌓은 연극 공연 사진들이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순서대로 걸려 있다. 전시장 안에는 박정자씨가 직접 녹음한 시 낭송 앨범이 낮은 소리로 울려 퍼진다. 전시장 벽 군데군데 걸린 엘시디 화면에는 연극 공연과 기념 영상이 나온다. 최신형 아이패드도 놓여 있다. 화면을 건드리면 연극 사진과 팸플릿이 주르륵 펼쳐진다.
전시품만으로 대표 연극배우의 ‘50년’이 기념된다면 다소 아쉬울 터다. ‘박정자전’에는 특별한 무대가 마련돼 있다. 여느 갤러리라면 문을 닫을 저녁 6시, 박정자의 친구들이 전시장을 찾아 30여분 동안 축하 공연을 벌인다. 갤러리 안, 미음(ㅁ)자 모양으로 생긴 야외 뜰에서 매일 저녁 어스름을 조명 삼아 열리는 콘서트는 놓치기 아까운 무대다. “박정자 선생님이 노래를 워낙 잘하는데, 바로 옆에 앉아 계시니까 부담이 됩니다. 거기다 노래의 대가 강부자 선생님도 와 계시니 더…(웃음).” 첫날 축하 게스트 가수 최백호씨는 9곡의 노래로 ‘박정자전’을 축하했다. 최씨 옆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듣던 박씨는 최씨의 대표곡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와 ‘낭만에 대하여’를 직접 부르기도 했다.
작은 콘서트가 끝나고 난 뒤엔 박정자와 배우 김성녀, 정동환, 서이숙, 박상종, 김은석씨가 연극 <맥베스>를 45분 동안 낭독 공연한다. 2시간이 넘는 전체 내용을 압축한 내용이다. 공연 음향으로 쓰이는 까마귀 울음과 어두컴컴한 밤은 극장보다 더 작품 분위기에 어울렸다. 실제 공연 못지않은 열연에 100여명의 관객은 숨죽인 듯 집중했다.
첫날 ‘박정자전’에는 배우 손숙, 강부자씨 등 박정자와 친분이 깊은 유명인들이 자리해 박씨를 축하하기도 했다. 손씨는 “(박씨는) 내가 일생에서 형님이라고 부르는 단 한 분이다. 눈물이 날 것 같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안국동 아트링크에서는 13일까지 열리고, 이후엔 자리를 옮겨 17~31일 서울 동숭동 정미소갤러리에서 전시가 이어진다. 미니 콘서트와 낭독 공연은 아트링크 전시에서만 볼 수 있다. 공연을 보려면 전화로 예약해야 한다. 예약을 못해도 운이 좋다면 당일 오후 4시 반 전시장에서 선착순 10명에게만 주어지는 입장권을 받을 수 있다. (02)589-1002.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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