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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귀족부인의 권태·광기 두손에 그러쥔 이혜영

등록 2012-05-08 18:10

연극복귀작 ‘헤다 가블러’
13년 공백에도 연기 돋봬
헤다 가블러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소파에 낡은 모자가 널부러져 있는 걸 못 견디는 까다로운 귀족 부인의 모습을 보이다가도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깔깔거린다. 장군이었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권총을 수시로 들고나와 예사로 쏘아댄다.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그 표정엔 권태가 가득하다.

헤다는 여섯 달의 긴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신부지만, 신혼의 삶은 달콤하기보단 지루하고 갑갑하다. 문화학자인 남편 테스만은 헤다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아니,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자신의 교수직을 유지하는 것이다. 판사 브라크는 탐욕스런 눈빛으로 호시탐탐 헤다를 욕망한다. 갑자기 나타난, 그의 옛 연인 뢰브로그는 이성적인 학자의 모습을 보이다가 헤다와 둘만 남으면 미련에 목매는 ‘찌질한’ 남자로 바뀐다.

남자들은 한심하고, 테스만의 고모인 깐깐한 율리아나, 뢰브로그를 사랑하는 순진한 테아 등 여자들은 갑갑해 보인다. 주변인들에게서 어떤 영감도, 일상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는 헤다의 고독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2일부터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연극 <헤다 가블러>(헨리크 입센 작, 박정희 연출)는 헤다의 권태와 스스로 택한 파멸을 담는다. 수십 개의 밝은 조명과 귀를 찢을 듯 쨍쨍거리는 음향 속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헤다가 죽음을 맞는 마지막 장면은 특히 강렬하다.

주인공 헤다 역을 맡아 13년 만에 연극무대에 선 이혜영은 반짝반짝 빛난다. 지난달 23일 공연에 앞서 <한겨레>와 만난 그는 “<헤다 가블러>는 (연극에 출연하지 않은) 지난 13년의 시간에 대한 보상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140분 동안 때론 우아하게, 때론 천진난만하게 변신하며 무대를 휘어잡는 이혜영의 연기를 보는 일은 관객들에게도 오랜만에 만나는 좋은 기회다. 그동안 이혜영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무혁의 엄마 오드리’(<미안하다 사랑한다>), ‘구준표 엄마’(<꽃보다 남자>) 등, 표독스런 ‘엄마’ 역을 맡아서 했다.

“더는 제가 할 엄마가 없는 거예요. 너무 많이 해서. 지금은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나, 헤다 가블러’예요. 내가 중요한 거죠.” 녹슬지 않은 연기로 ‘나’를 찾은 그는 역시 ‘나’를 찾고 싶어하는 헤다 가블러와 닮았다. “<햄릿>이라든지 고전 연극을 봐도 여자 역은 대개 상대적인 존재예요. 남자가 주인공이고, 여자는 그 상대죠. 헤다 가블러는 ‘주체적인 여자 역’의 탄생을 보여줍니다.” 28일까지. 1644-2003.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명동예술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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