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까지 열리는 핀 율 탄생 100주년전은 매달 주제와 전시 구성이 바뀐다. 7월 예정인 전시장 배치. 핀 율의 다양한 팔걸이의자들을 모았다.
덴마크 디자이너 핀 율 탄생 100돌, 국내 첫 전시회
유엔은 올해 뉴욕 본부 신탁통치이사회층의 가구를 62년 만에 바꾸는 한편 회의실 인테리어도 62년 전 모습을 살려 새로 꾸미기로 했다. 1951년 품격 높은 분위기로 이 공간을 꾸몄던 한 디자이너의 탄생 100돌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당시 38살의 젊은 나이에 유엔 회의실 인테리어를 맡아 주목받았던 그 디자이너가 덴마크의 핀 율(1912~1989)이다.
핀 율은 북유럽 특유의 나무 가공 기술과 화사하고도 우아한 색감이 어우러지는 가구로 현대 디자인사에 이름을 남긴 작가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현대 가구로 유명한 그의 대표작들은 의자 하나가 수천만원대에 거래되지만 작품 자체가 적어 사고 싶어도 사기 어려울 정도다.
이 핀 율의 가구와 디자인세계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전시회가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림미술관(02-720-0667)에서 열리고 있다. 그의 대표작은 물론이고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북유럽 스타 디자이너들의 가구도 함께 전시해 비교하며 볼 수 있다. 9월23일까지 다섯 달 동안 열리기 때문에 매달 주제와 전시장 구성이 바뀌는 점도 흥미롭다. 한국에 처음 선보이는 디자이너의 전시인데도 일찌감치 디자인 팬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져 가구 전시회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관객들이 몰리고 있다.
현대 디자인사에 획 그어
건축물 같은 구조미 특징
대표작 수천만원대 달해 ■ 돌연변이처럼 탄생한 의자의 명인
핀 율이 독특한 점은 ‘정통’ 가구 디자이너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핀 율이 가구를 만들게 된 것은 가구나 예술작품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내부 공간의 품격을 만들며 이게 자연스럽게 건축 전체로 이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집에 놓고 쓰겠다는 생각으로 직접 가구를 만들었다. 상품화를 염두에 두고 만드는 가구들과 달리 마음껏 자신의 생각과 취향을 펼친 그의 개성적인 가구는 ‘구조미’가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단순하면서도 무게를 잘 지탱하는 구조, 건축물 같은 프레임이 보여주는 구조의 아름다움이 만들어내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그의 의자는 등받이나 의자 시트를 구조 틀에서 살짝 띄우는 디자인 덕분에 다른 가구보다 더 경쾌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 라이벌과의 경쟁이 만들어낸 덴마크 가구의 발전
핀 율과 가장 대립했던 가구 디자이너가 또다른 덴마크 가구의 거장 뵈르게 모겐센이었다. 모겐센은 덴마크 옛 가구의 장점과 멋을 되살리는 ‘전통의 재창조’를 추구했던 주류파의 핵심이었다. 핀 율은 이들의 가구가 지루하다고 평했고, 모겐센 등은 핀 율의 가구가 너무 튀고 값비싸다고 비판했다. 이런 경쟁관계 속에서 두 디자이너는 각각의 길에 더 매진했다. 핀 율은 귀족적이고 우아한 최고급 가구의 지존으로 자리잡았고, 모겐센은 일반 서민들을 위한 ‘아름답고 튼튼하고 저렴한’ 가구로 디자인사에 업적을 남겼다.
■ 마니아의 열정, 잊혀진 거장을 알리다
당대 최고의 가구 디자이너였는데도 핀 율은 한동안 대중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이유는 그의 가구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최고의 재력가들만 소장할 수 있기에 오히려 더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이었다. 섬세하고 수작업이 많이 들어가는 특성 탓에 그의 가구는 대량생산하기가 어려웠고, 희소성은 더욱 높아졌다. 소장가들 사이에서만 이름 높았던 그를 다시 대중들에게 알린 이가 세계적인 의자 수집가 오다 노리쓰구(66)다. 평생에 걸쳐 1500여점의 가구를 수집한 그는 40여년 전 우연히 핀 율의 대표작인 ‘치프테인 의자’를 접하고 핀 율한테 빠져들어 그의 의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세계를 일본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 알려왔다. 한국에 처음으로 핀 율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의 주요 의자들이 그의 소장품이다. 여기에 한국의 핀 율 마니아들도 힘을 보탰다. 유명 실내건축가 마영범씨 등이 소장품을 전시에 내놓는 한편 전시 공간 일부를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대림미술관 제공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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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 율의 대표작 ‘치프테인’ 의자. 1949년 작. 덴마크 프레데리크 국왕이 앉은 의자이자, 덴마크의 해외 대사관에 공급되는 의자로 유명하다.
건축물 같은 구조미 특징
대표작 수천만원대 달해 ■ 돌연변이처럼 탄생한 의자의 명인
핀 율이 독특한 점은 ‘정통’ 가구 디자이너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핀 율이 가구를 만들게 된 것은 가구나 예술작품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내부 공간의 품격을 만들며 이게 자연스럽게 건축 전체로 이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집에 놓고 쓰겠다는 생각으로 직접 가구를 만들었다. 상품화를 염두에 두고 만드는 가구들과 달리 마음껏 자신의 생각과 취향을 펼친 그의 개성적인 가구는 ‘구조미’가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단순하면서도 무게를 잘 지탱하는 구조, 건축물 같은 프레임이 보여주는 구조의 아름다움이 만들어내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그의 의자는 등받이나 의자 시트를 구조 틀에서 살짝 띄우는 디자인 덕분에 다른 가구보다 더 경쾌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 라이벌과의 경쟁이 만들어낸 덴마크 가구의 발전
핀 율과 가장 대립했던 가구 디자이너가 또다른 덴마크 가구의 거장 뵈르게 모겐센이었다. 모겐센은 덴마크 옛 가구의 장점과 멋을 되살리는 ‘전통의 재창조’를 추구했던 주류파의 핵심이었다. 핀 율은 이들의 가구가 지루하다고 평했고, 모겐센 등은 핀 율의 가구가 너무 튀고 값비싸다고 비판했다. 이런 경쟁관계 속에서 두 디자이너는 각각의 길에 더 매진했다. 핀 율은 귀족적이고 우아한 최고급 가구의 지존으로 자리잡았고, 모겐센은 일반 서민들을 위한 ‘아름답고 튼튼하고 저렴한’ 가구로 디자인사에 업적을 남겼다.
덴마크를 대표하는 의자로 불리는 ‘팔걸이의자 No.45’. 의자 시트와 의자 틀 사이에 틈을 둬서 앉는 부분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디자인과 아름다운 팔걸이가 돋보인다.
당대 최고의 가구 디자이너였는데도 핀 율은 한동안 대중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이유는 그의 가구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최고의 재력가들만 소장할 수 있기에 오히려 더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이었다. 섬세하고 수작업이 많이 들어가는 특성 탓에 그의 가구는 대량생산하기가 어려웠고, 희소성은 더욱 높아졌다. 소장가들 사이에서만 이름 높았던 그를 다시 대중들에게 알린 이가 세계적인 의자 수집가 오다 노리쓰구(66)다. 평생에 걸쳐 1500여점의 가구를 수집한 그는 40여년 전 우연히 핀 율의 대표작인 ‘치프테인 의자’를 접하고 핀 율한테 빠져들어 그의 의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세계를 일본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 알려왔다. 한국에 처음으로 핀 율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의 주요 의자들이 그의 소장품이다. 여기에 한국의 핀 율 마니아들도 힘을 보탰다. 유명 실내건축가 마영범씨 등이 소장품을 전시에 내놓는 한편 전시 공간 일부를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대림미술관 제공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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