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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어떤 학살도 이 어머니들을 꺾지 못했다

등록 2012-05-20 20:49

올 상반기 한국 연극계 최고 화제작으로 손꼽히는 연극 <과부들>(왼쪽)과 <그을린 사랑>은 우리 어머니의 모성애를 통해 우리 시대의 ‘불편한 진실’과 사랑의 위대함을 일깨워준다. 극단 백수광부, 명동예술극장 제공
올 상반기 한국 연극계 최고 화제작으로 손꼽히는 연극 <과부들>(왼쪽)과 <그을린 사랑>은 우리 어머니의 모성애를 통해 우리 시대의 ‘불편한 진실’과 사랑의 위대함을 일깨워준다. 극단 백수광부, 명동예술극장 제공
상반기 최고 기대작 연극 2편
이성열 연출 ‘과부들’
독재 치하 남자들 실종되고
여인들은 의문사 주검 거둬

김동현 연출 ‘그을린 사랑’
레바논 내전 살아낸 한 여자
끔찍한 운명, 사랑으로 안아

어머니는 강하다. 그들에게는 다른 어떤 것에도 비길 수 없는 강력한 힘인 모성애가 있다. 6월에 강한 어머니들의 삶을 담은 연극 두 편이 첫선을 보인다. 극단 백수광부의 <과부들>(6월1~10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 명동예술극장의 <그을린 사랑>(6월5일~7월1일). 모두 해외 연극무대에서 화제를 모았으며, 한국 연극계도 상반기 최고작으로 꼽는 작품들이다.

두 연극은 인간 학살의 내전과 독재정권의 현장에서 가족을 지켜내려는 어머니의 거룩한 싸움을 그렸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한국 연극계가 인정하는 중견 연출가 이성열(50·극단 백수광부 대표)과 김동현(47·극단 코끼리만보 대표)의 저력을 엿볼 수 있다는 것도 관심거리다.

<과부들>은 1970년대 칠레 피노체트 군사정권기에 일어난 실종과 의문사가 바탕이다. 시와 소설, 희곡, 평론을 넘나드는 세계적인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70·미국 듀크대 교수)의 작품 가운데 <죽음과 소녀>, <경계선 너머>와 함께 ‘저항 3부작’으로도 불리는 작품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1970~73년 칠레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민주혁명에 참가했던 도르프만은 군부독재 치하의 비극을 합창과 춤을 곁들인 고대 그리스 서사극 형식으로 풀어냈다.

남미의 어느 시골 마을에는 남자들이 모두 실종되고 여자들만 남았다. 어느 날 강에 고문으로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 주검 한 구가 떠내려온다. 아버지와 남편, 아들 둘이 군부에 끌려간 ‘소피아’는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며 장례를 치르려고 한다. 그러나 마을 치안유지군은 고문과 살육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감추려고 몰래 주검을 불태운 뒤 소피아의 입을 막기 위해 어린 손자를 고문하고 총살한다. 그 뒤로 또 주검 한 구가 떠내려오자 여자 서른여섯명 모두 소유권을 주장한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 “이 세상에는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언제나 함께 살고 있다”(소피아), “말을 안 하려고 해도 이야기는 전해질 거야”(피델리아)라고 외친다.

이 작품은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다뤘지만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 가치와 진실의 힘이 느껴진다. 칠레와 비슷한 현대사의 비극을 겪은 우리에게도 그 ‘불편한 진실’이 아픔으로 다가온다. 이성열 연출가는 “알레고리가 많아서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이야기라고 말하기 힘들다”며 “영혼이 없는 시대에 순결하고 위대한 영혼을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연기파 배우들인 예수정(소피아), 한명구(대위), 전국향(테레사), 이지하(알렉산드라), 박완규(중위), 박윤정(세실리아) 등 주연들과 특별 출연한 오현경·이호성·이영숙 등 원로·중견을 포함해 배우 30명이 큰 무대를 채운다. (02)813-1674.

연극 <그을린 사랑>은 우리에게는 지난해 드니 빌뇌브 감독의 동명의 영화로 더 알려진 작품이다. 레바논 태생 캐나다 작가이자 연출가 와즈디 무아우아드가 내전 체험을 토대로 삼아 한 여자의 비극적인 운명과 치열한 삶, 그 여자의 흔적을 톺아가는 쌍둥이 아들·딸의 충격적인 여정을 마치 고대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처럼 꾸몄다. 2003년 프랑스에서 초연된 뒤 프랑스어권에서만 100개가 넘는 연출 판본으로 공연되어 찬사를 받았다.

레바논의 어느 시골 기독교 집안의 14살 사춘기 소녀 나왈은 팔레스타인 난민인 이슬람교도 청년 와합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지만 와합은 죽임을 당하고 아이는 고아원에 버려진다. 그 뒤 나왈은 아이를 찾아 민족·종교간 갈등으로 폭력과 야만이 난무하는 전쟁터를 헤맨다. 나왈은 삶의 온갖 질곡을 겪고 캐나다 병원에서 죽어가면서 쌍둥이 자식 잔과 시몽에게 아버지와 형(혹은 오빠)을 찾으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 연극은 전쟁의 비극 앞에 내던져진 한 여자의 인생역정을 그렸지만, 결국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작품이다. 그 해답은 사랑과 용서와 화해다. 나왈이 5년간 침묵을 깨고 죽기 전 남긴 “우리 함께 있으니 모든 게 나아질 거야”라는 말처럼 모든 비극을 사랑의 이름으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일러준다.

김동현 연출가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비극이 시작됐고 그 비극의 끝에는 용서와 구원의 길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와는 달리, 이 연극의 매력인 시적인 언어의 강렬함을 보여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다아야, 배해선, 이연규가 나왈의 10대, 40대, 생을 마감하기 직전인 60대를 연기하고, 김주완, 이진희가 시몽과 잔 역을 맡는다. 또 남명렬, 백익남, 이윤재, 박성연, 전박찬 등 중견·신진 배우들이 1인 다역으로 뒤를 받친다. 1644-2003.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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