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착함과 못됨’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전시회를 연 두 젊은 디자이너 김동훈(왼쪽)과 장태훈씨. 뒤에 있는 그림은 ‘고무줄’을 이용해 사람을 괴롭히는 법을 설명한 그림 중 하나다.
‘못된 디자인’전 김동훈·장태훈씨
착한 디자인만 하라고? 진짜 나쁜 걸 보여주마!
치맛속 훔쳐보는 거울운동화
휴지 보관함 따는 만능열쇠
‘카페 전시장’서 도발적 전시
착한 디자인만 하라고? 진짜 나쁜 걸 보여주마!
치맛속 훔쳐보는 거울운동화
휴지 보관함 따는 만능열쇠
‘카페 전시장’서 도발적 전시
‘설마 이건…?’ 카페 탁자 옆엔 웬 하얀 신발이 있다. 발등에 거울이 달린 실내화다. 사춘기 남학생들이 여자 치맛속을 몰래 보기 위해 실내화에 거울을 붙인 바로 그것 아닌가.
이 카페, 어딘가 좀 수상하다. 테이블마다 야릇한 것들이 놓여 있다. 손잡이 부분을 불이 번쩍거리는 아이들 장난감으로 만든 삽, 쇼핑백을 든 인조 손, 누르면 ‘삐’ 소리가 나는 작은 버튼….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서울 이태원동 옆 낡은 집을 개조한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 녹사평’은 실은 ‘카페를 위장한 미술 전시장’이다. 미술관의 고정관념에 도전해 미술 공간이 평범한 동네 속으로 파고든 곳. 최근 개장한 이곳에서 속옷을 훔쳐보는 신발처럼 ‘나쁜 짓’에 쓰는 물건들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름하여 ‘못된 디자인’전이다.
‘제로 랩’이란 사무실을 운영하는 두 산업 디자이너 장태훈(31), 김동훈(30)씨는 최근 디자인계의 중요 이슈인 ‘착한 디자인’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착한 디자인’은 제품을 팔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디자인을 반성하면서, 값싸고 도움이 되는 디자인 본연의 취지를 되살리자는 개념이다. 가령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한 물펌프 같은 것이다. 놀이기구처럼 만들어 아이들이 펌프를 누르며 놀면서 물도 나오게 하는.
두 사람은 여기에 딴죽을 걸기로 했다. “착한 디자인이 너무 중시되다 보니 친환경이나 착함 같은 가치들이 거꾸로 억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고 봤어요. 기존 디자인은 잘못된 걸까?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럼 진짜 못된 디자인을 보여주면 기존 디자인이 못되지 않다는 게 증명되지 않겠느냐고 한 거죠.” 디자인의 작용과 부작용, 선과 위선은 무엇인지 의문을 던지는 역발상의 전시회는 그렇게 탄생했다.
둘은 머리를 맞대고 ‘못된 디자인’을 개발했다. ‘공중 저금통’은 고장난 공중전화 속에 저금통을 넣었다. 돈을 넣으면 저금통으로 직행. 사람들은 고장나서 돈을 먹었으리라 생각하고 그냥 가버린다.
장난감과 결합시킨 삽은 ‘놀이를 가장한 노동력 착취’란 작품. 소리가 나는 게 재미있어 아이들이 삽질을 하게 만든다. 금속제 반지 ‘덤 상품 해킹하기’는 반지 속에서 스카치테이프가 나와 마트에서 물건 두 개를 묶어 ‘1+1 상품’처럼 속일 수 있다. 쇼핑백을 든 인조 손은 진짜 손을 숨겨 ‘성추행을 돕는 디자인’, 소리가 나는 버튼은 버스에서 카드를 대는 척하면서 가짜 소리로 운전기사를 속이는 도구다.
가장 노골적인 제목의 ‘생필품 도둑’은 아주 간단한 플라스틱 열쇠다.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 보관함을 여는 만능 열쇠예요. 휴지를 훔쳐올 수 있죠.” 문득 카페 입구에 붙은 두루마리 휴지며 과자봉지가 떠올랐다.
“그럼 저 물건들이 혹시?” “맞아요, 저희가 이 물건들로 ‘취득한 것들’이라고 해두죠. 해보니까 다 가능했어요. 물론 치맛속 엿보기와 성추행 실험은 안 했습니다.” 6월19일까지, 오전 11시~밤 12시, 무료. (02)790-2637.
글·사진 구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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