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연출가 정의신씨
재일동포 연출가 정의신씨 새 연극
일제시대 배경 ‘봄의 노래는…’
전남 외딴섬을 배경으로 삼은
이발소집 네 딸의 전쟁 같은 삶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일제강점기의 한국 현대사와 그 질곡에 놓인 재일동포의 삶에 집착해온 재일동포 2세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55·사진)씨가 신작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를 내놓았다. 서울 남산예술센터와 극단 미추가 공동 제작하는 작품이다. 오는 12일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무대에 오르는 이 연극은 일제 말인 1944년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전남의 한 외딴섬에서 ‘홍길이네 이발소’를 꾸리며 살아가는 한 가족 이야기를 다뤘다. 그는 일본 사회의 재일동포나 한국인을 등장시킨 작품을 주로 써왔으며, 한국 자체를 배경으로 쓴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대학로 서울연극센터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정의신씨를 만났다. 그는 “<봄의 노래는…>은 아버지의 기억에 바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15살에 충남 논산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쌀집과 고물상 일을 하며 우리 다섯 형제를 키웠습니다. 아버지는 늘 고향을 그리워하셨는데 왜 돌아가지 못하는지 궁금했어요. 그러다 스무살 무렵에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일본에서 일본군 헌병을 지냈고 그 일로 아버지 집안이 동네에서 돌팔매질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향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땅을 밟았어요.” 그는 작품을 쓰면서 “일제강점기의 시대 상황과 맏아들이면서도 고향을 가지 못하는 아버지의 복잡한 심경을 담아내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봄의 노래는…>은 해방 직전 한 외딴섬에서 작은 이발소를 꾸리며 살아가는 흥길·영순 내외와 네 딸 진희, 선희, 미희, 정희 자매의 서로 다른 사랑 이야기이다. 한쪽 다리를 저는 첫째 진희는 전쟁으로 역시 한쪽 다리를 잃은 일본군 장교 시노다와 애틋한 마음을 나누고, 둘째 선희는 인기 가수가 되어 가난한 섬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초등학교 교사인 셋째 미희는 언니 진희를 마음에 두고 있던 만석과 결혼하지만 마음을 잡지 못하는 만석 때문에 속앓이를 하다 군인 원창과 불장난 같은 사랑에 빠진다. 넷째 정희는 어쩔 수 없이 일본군 헌병이 된 조선인 대운과 우정 같은 사랑을 키워간다. “작고 평화로운 섬에 전쟁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때 작은 단위의 가족이 전쟁의 광기에 휩쓸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가족이 전쟁에 대응하는 제각각 반응들, 육지에서 고립된 공간에서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보려고 했어요.” 그는 섬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은 까닭을 “격리된 느낌, 폭풍 속에서도 따스하고 평안함을 잃지 않을 것 같은 목가적인 분위기, 섬에 대해 꿈꾸는 환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래전에 최양일 감독과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서편제> 무대였던 어느 섬(청산도)을 찾아갔는데 한 촌로가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주둔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이 작품은 2008년과 2011년 한국과 일본에서 공연되어 두 나라의 주요 연극상을 휩쓴 그의 대표작 <야키니쿠 드래곤>을 연상시킨다. 순한 아버지와 억센 어머니, 다리를 저는 큰딸을 비롯해 어긋난 사랑에 괴로워하는 셋째 딸 등 저마다 개성이 다른 자매들, 그들과 애증으로 엮이는 주변 인물 등 등장인물이나 흥청망청대는 축제 같은 분위기가 닮았다. 정씨는 “힘겨운 삶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는 점에서 주제는 같다”고 귀띔했다. 아직도 한국말에 서툰 그는 스스로 한국과 일본 사회에서 ‘경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한다. 그래서 재일동포나 말을 더듬는 사람, 장애인, 동성애자, 왕따 등 소수자에 대한 애정이 많다. 그는 “나 자신이 재일동포라는 소수자이고 재일동포촌이라는 밑바닥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봄의 노래는…>에는 박수영, 고수희, 김문식 등 <야키니쿠 드래곤>의 주역 배우들과 극단 미추의 간판 배우 정태화와 황태인, 역시 미추 출신으로 국립극단 배우로 활약했던 서상원, <쥐의 눈물>에서 억척스런 어머니 역으로 인상깊었던 염혜란 등이 출연한다. 미술 박동우, 조명 김창기, 의상 오수현, 작곡 김철환, 안무 김재리 등 대학로를 대표하는 스태프가 한자리에 모였다. 7월1일까지. (02)758-2150.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극단 미추 제공
전남 외딴섬을 배경으로 삼은
이발소집 네 딸의 전쟁 같은 삶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일제강점기의 한국 현대사와 그 질곡에 놓인 재일동포의 삶에 집착해온 재일동포 2세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55·사진)씨가 신작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를 내놓았다. 서울 남산예술센터와 극단 미추가 공동 제작하는 작품이다. 오는 12일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무대에 오르는 이 연극은 일제 말인 1944년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전남의 한 외딴섬에서 ‘홍길이네 이발소’를 꾸리며 살아가는 한 가족 이야기를 다뤘다. 그는 일본 사회의 재일동포나 한국인을 등장시킨 작품을 주로 써왔으며, 한국 자체를 배경으로 쓴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대학로 서울연극센터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정의신씨를 만났다. 그는 “<봄의 노래는…>은 아버지의 기억에 바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15살에 충남 논산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쌀집과 고물상 일을 하며 우리 다섯 형제를 키웠습니다. 아버지는 늘 고향을 그리워하셨는데 왜 돌아가지 못하는지 궁금했어요. 그러다 스무살 무렵에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일본에서 일본군 헌병을 지냈고 그 일로 아버지 집안이 동네에서 돌팔매질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향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땅을 밟았어요.” 그는 작품을 쓰면서 “일제강점기의 시대 상황과 맏아들이면서도 고향을 가지 못하는 아버지의 복잡한 심경을 담아내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봄의 노래는…>은 해방 직전 한 외딴섬에서 작은 이발소를 꾸리며 살아가는 흥길·영순 내외와 네 딸 진희, 선희, 미희, 정희 자매의 서로 다른 사랑 이야기이다. 한쪽 다리를 저는 첫째 진희는 전쟁으로 역시 한쪽 다리를 잃은 일본군 장교 시노다와 애틋한 마음을 나누고, 둘째 선희는 인기 가수가 되어 가난한 섬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초등학교 교사인 셋째 미희는 언니 진희를 마음에 두고 있던 만석과 결혼하지만 마음을 잡지 못하는 만석 때문에 속앓이를 하다 군인 원창과 불장난 같은 사랑에 빠진다. 넷째 정희는 어쩔 수 없이 일본군 헌병이 된 조선인 대운과 우정 같은 사랑을 키워간다. “작고 평화로운 섬에 전쟁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때 작은 단위의 가족이 전쟁의 광기에 휩쓸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가족이 전쟁에 대응하는 제각각 반응들, 육지에서 고립된 공간에서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보려고 했어요.” 그는 섬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은 까닭을 “격리된 느낌, 폭풍 속에서도 따스하고 평안함을 잃지 않을 것 같은 목가적인 분위기, 섬에 대해 꿈꾸는 환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래전에 최양일 감독과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서편제> 무대였던 어느 섬(청산도)을 찾아갔는데 한 촌로가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주둔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이 작품은 2008년과 2011년 한국과 일본에서 공연되어 두 나라의 주요 연극상을 휩쓴 그의 대표작 <야키니쿠 드래곤>을 연상시킨다. 순한 아버지와 억센 어머니, 다리를 저는 큰딸을 비롯해 어긋난 사랑에 괴로워하는 셋째 딸 등 저마다 개성이 다른 자매들, 그들과 애증으로 엮이는 주변 인물 등 등장인물이나 흥청망청대는 축제 같은 분위기가 닮았다. 정씨는 “힘겨운 삶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는 점에서 주제는 같다”고 귀띔했다. 아직도 한국말에 서툰 그는 스스로 한국과 일본 사회에서 ‘경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한다. 그래서 재일동포나 말을 더듬는 사람, 장애인, 동성애자, 왕따 등 소수자에 대한 애정이 많다. 그는 “나 자신이 재일동포라는 소수자이고 재일동포촌이라는 밑바닥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봄의 노래는…>에는 박수영, 고수희, 김문식 등 <야키니쿠 드래곤>의 주역 배우들과 극단 미추의 간판 배우 정태화와 황태인, 역시 미추 출신으로 국립극단 배우로 활약했던 서상원, <쥐의 눈물>에서 억척스런 어머니 역으로 인상깊었던 염혜란 등이 출연한다. 미술 박동우, 조명 김창기, 의상 오수현, 작곡 김철환, 안무 김재리 등 대학로를 대표하는 스태프가 한자리에 모였다. 7월1일까지. (02)758-2150.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극단 미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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