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리뷰 l 정의신 연출 연극 ‘봄의 노래는…’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씨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작품에 눈물과 웃음을 적절히 버무리는 솜씨가 여간 능숙한 게 아니다. 재일동포 2세로서 일본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한국인 정서의 밑바닥을 꿴다. 지난 12일부터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는 그의 이런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무대다.
그가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광복 직전인 1944년 일본군이 주둔한 한국의 어느 작은 섬에 사는 한 가족을 소재로 삼았지만, 무겁기만 하지는 않다. 그곳은 나날이 전쟁의 공포가 짓누르고 초등학생마저 비행장 활주로 건설에 하루에 10시간 동원되는 힘든 삶과 죽음이 교차하지만 춤과 노래와 술이 끊이지 않는 축제 마당이기도 하다.
작품은 세월이 흘러 이미 세상을 떠났으나 이승을 헤매는 남편 흥길과 호호백발의 노인이 된 아내 영순의 회상으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눈부신 산수유 꽃잎들이 바다 위로 흩날리는 “겁나게 이뻤던” 어느 봄날에 흥길네 이발소에서 셋째 딸 미희의 결혼식(사진)이 열린다. 홍길과 영순 내외에게는 왼쪽 발목이 부러져 절름발이가 된 맏딸 진희, 가수를 꿈꾸며 일본군 부대 클럽에서 노래하는 둘째 딸 선희, 언니 진희를 마음에 두고 있던 남편 만석 때문에 속앓이를 하다 군인 원창과 불장난 같은 사랑에 빠지는 셋째 딸 미희, 어쩔 수 없이 일본군 헌병이 된 조선 남자 대운과 우정 같은 사랑을 키워가는 막내딸 정희가 있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 전쟁을 겪어내는 생존 방식을 밑그림 삼아 네 딸의 서로 다른 사랑법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그려낸다.
정의신씨는 일제 강점기의 비참한 역사를 고발하기보다는 그 광기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아픔을 살핀다. 그 역시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주변인’인 것처럼,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모두 광기의 역사에 놓인 주변인일 뿐이다. 따라서 그는 흥길네 가족과 일본군 장교 시노다의 관계를 통해 여전히 불편한 한국과 일본의 소통 가능성을 엿보려고 한다. 물론 곱게 보지 않는 이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것이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휴머니즘이자 그가 이해하는 한국인의 심성으로 읽힌다.
특히 공연에서 한국인의 정서로는 낯설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절름발이 큰딸 진희가 한쪽 다리가 없는 일본군 장교 시노다의 발을 씻겨주는 행위는 마치 죄를 씻겨내는 세례행위를 떠올리게 한다. 전쟁 중에 아내와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잃고 아무런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시노다는 “여기서 이렇게 다리를 씻어줄 때마다 저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었어요”라고 고백한다.
2시간 가까이 한쪽 종아리를 접어 올려 넓적다리에 고정시킨 채 목발에 의지해 연기하는 시노다 역의 서상원씨, 억척스러운 어머니 영순 역의 고수희씨 연기가 돋보인다. 입버릇처럼 “부끄럽구마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춘근 역의 박수영씨와 둘째 딸 선희 역 염혜란씨의 능청스런 감초연기도 재미를 더한다. 7월1일까지. (02)758-2150.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남산예술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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