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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오태석의 대동굿, 흥에 겨워 눈물도 웃소

등록 2012-06-27 20:35

음악극 ‘김유정의 봄·봄’
음악극 ‘김유정의 봄·봄’
음악극 ‘김유정의 봄·봄’
문학적 해학 맛깔나게 비벼
무대·객석 경계없이 어깨춤
춘천 예술단체와 ‘협업’ 의미
드높은 극장 천장에 기다란 살구색 조각보 세 필이 차양처럼 내걸렸다. 무대 오른편으로는 옹기 장독대와 물을 길어올리는 펌프가 놓였고, 왼편으로는 대발에 주렁주렁 달린 부채들이 마치 시골 초가와 닮았다.

무대 앞에서는 아낙네들이 솥뚜껑을 뒤집어놓고 지짐이를 부치고 있다. 무대 뒤쪽에서 악사들이 25현가야금과 해금, 타악기로 흥겨운 가락을 연주한다.

동네 사람 ‘구팔이’가 썩 나서며 “불 받는대. 나오래”라고 소리친다. 그러자 ‘필순이’가 객석을 보고 “저기요. 밖이서 불 받는대요. 나오시래요들”이라며 손나발을 만든다. 무대 뒤편 문이 열리면서 배우들과 관객들이 함께 우르르 몰려나간다.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프로시니엄(액자틀) 무대’가 그 구분이 허물어진 전통 연희극의 야외 마당으로 바뀐다. 초가 앞마당에 횃불을 밝히는 ‘불받이’ 제의가 펼쳐진다. 앞으로 1년 동안 마을에서 쓸 신성한 새 불을 받는 마을 잔치이다.

“삼신 제왕님네/ 아들을 섬겨주던 천수관담/ 딸 섬겨주시던 문수관담/ 아버님 뼈를 빌던 제왕/ 어머님 살을 빌던 제왕/ …/ 그저 성세 많이 벌고/ 명복 많이 타게 점지하여 주옵소사/ 비나이다.”

배우들이 북과 꽹과리를 치고 춤을 추며 불받이 제의에 흥을 돋운다. 배우와 관객이 어울려 걸판진 대동굿이 벌어진다.

오태석(72·전 국립극단 예술감독) 연출가
오태석(72·전 국립극단 예술감독) 연출가
26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 축제극장 몸짓에서 열린 음악극 <김유정의 봄·봄>의 시연회 현장이다. 춘천시와 춘천시문화재단이 이 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간판 공연을 마련하기 위해 연극계의 거장 오태석(72·전 국립극단 예술감독) 연출가와 손잡고 지난 1년간 준비해온 작품이다. 오 연출가는 춘천 출신 소설가 김유정(1908~37)이 식민지 치하 한국 농촌의 궁핍상을 담은 <봄봄>과 <금따는 콩밭>의 줄거리를 바탕으로 대본을 짜고 한국의 전통 춤과 놀이, 노래를 입혀 음악극으로 만들었다. 김유정 문학의 소박한 해학과 멋이 오태석 특유의 연극 언어와 만나 1시간20여분간 한판 신명나는 놀이판으로 꾸며졌다.

오 연출가는 “다 차려놓고 감쪽같이 보여주는 서양연극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숨쉬기를 하는 음악극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유정은 치욕적인 시기에 하층민들의 빛과 그림자를 소탈하게 웃음으로 풀어놓았어요. 진한 아픔을 담은 웃음은 지금 시대에도 유효합니다.”

이번 공연은 지역 예술단체와 예술가들이 지역 자본을 토대로 국내 최고의 제작진과 협업해 지역의 이야기를 작품화했다는 데 의의가 크다. 이 ‘지역밀착형 공연’에는 강원도립무용단 김영주 안무가와 춘천 출신 이광택 화가, 강원도립국악관현악단이 참여했다. 또 지역 연극인 4명이 오 연출가가 이끄는 극단 목화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오 연출가는 “서울 중심의 공연문화에서 벗어나 지역의 제작 역량을 끌어올리는 물꼬를 트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지순 춘천시문화재단 이사장도 “음악극 <김유정의 봄·봄>은 서울 중심의 공연제작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며 “춘천에선 상설 공연으로 육성하고 전국 순회공연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28일부터 7월1일까지 춘천 축제극장 몸짓. (033)251-0531.

춘천/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이도희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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