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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소록도 울려퍼진 83살 할머니의 노래

등록 2012-06-28 20:02수정 2012-06-29 09:45

가수 김창완씨가 28일 오후 전남 고흥군 소록도 국립소록도병원 로비에서 열린 병원음악회에서 공연하는 도중 한센병 할머니와 손을 잡고 있다.
가수 김창완씨가 28일 오후 전남 고흥군 소록도 국립소록도병원 로비에서 열린 병원음악회에서 공연하는 도중 한센병 할머니와 손을 잡고 있다.
김창완·정원영밴드 등 한뜻
국립소록도병원서 음악공연
간호사 위한 할머니 노래에
“우리음악보다 더 깊은 감동”
“일세기의 남단고도 소록의 아픔/ 님들이여 괴로워서 그 얼마나 울었던가요/ 온 우주도 우리와 같이 슬퍼하였으리/ 십오 밝은 달과 같은 백의천사들이여/ 장애인들 위하여서 보름달이 되셨네.”

김용덕(83) 할머니의 노래가 28일 오후 전남 고흥군 소록도 국립소록도병원 로비에 울려퍼졌다. 한국 대중음악의 두 거장 김창완씨와 정원영씨가 숨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김 할머니가 노래하는 내내 옆에서 허옥희(49) 간호사가 마이크를 갖다댔다. 김 할머니는 손과 발이 돼주는 허 간호사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황성옛터’의 노랫말을 손수 바꿨다.

한센병 환자인 김용덕 할머니(오른쪽)가 자신을 돌봐주는 허옥희 간호사(왼쪽)에게 고마움을 전하려고 손수 노랫말을 바꾼 ‘황성옛터’를 부르는 모습. 씨제이문화재단 제공
한센병 환자인 김용덕 할머니(오른쪽)가 자신을 돌봐주는 허옥희 간호사(왼쪽)에게 고마움을 전하려고 손수 노랫말을 바꾼 ‘황성옛터’를 부르는 모습. 씨제이문화재단 제공

평양이 고향인 김 할머니는 10살에 한센병을 앓았다. “눈썹이 빠지고,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감각이 없어 아픈 줄도 몰랐지만, 무슨 병인지도 몰랐지.” 한센병임을 알아챈 동네 목사의 소개로 소록도까지 와서 입원했다. 그의 나이 11살이었다. 40여년 전 손과 발을 잃었고, 20여년 전 시력까지 잃었다.

“울기도 많이 울고, 고생 많이 했지. 다른 애들은 고향에서 엄마 아빠랑 먹고 싶은 거 먹으며 편히 사는데,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나 원망도 했어. 그런데 지금 와서 83년을 살아온 거 생각하면 참 감사해. 이렇게 오래오래 살고 싶어.”

허 간호사는 제주에서 한센병 환자 돌보는 일을 하다가 어느날 소록도에 와보고 깨달았다. ‘내가 있을 곳이 여기구나.’ 27년 전 아예 옮겨와 병원에서 꼬박 21년을 근무했다. 한센병 어르신께 밥이며 반찬이며 해드리며 “손주, 며느리, 친구, 딸”이 됐다. “여기 있는 건 제가 좋아서예요. 봉사한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많은 걸 배우고 받고 있는 걸요. 지금의 삶이 참 감사해요.”

김 할머니의 노래에 귀기울이던 김창완씨는 “이곳 어르신들이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보신다. 다들 정말 행복해하셔서 저도 행복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정원영씨는 “할머니 노래를 듣고 눈물이 났다”며 “당신의 처절한 삶과 고마워하는 마음이 그대로 녹아있어 우리가 하는 음악보다 훨씬 더 깊은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 노래가 끝난 뒤 싱어송라이터 이정아씨가 무대에 올라 답가를 불렀다.

“하늘처럼 바다처럼 멈춰진 듯 고요한 맘/ 노래하네 꿈을 꾸네 훨훨 날아오르네/ …바람처럼 구름처럼 너울너울 춤을 추네/ 너를 안고 나를 안고 너울너울 춤을 추네.”

할머니와 간호사를 위해 이씨가 그의 스승인 정원영씨와 함께 만든 ‘바람의 노래’다. 한센병 환자들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이어 정원영밴드, 김창완밴드가 잇따라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자 병원이 흥겨운 잔치마당으로 바뀌었다.

이날 무대는 씨제이문화재단 주최 ‘씨제이튠업 우르르 음악여행’의 하나로 열린 소록도 병원음악회다. 김창완·정원영씨가 신인 음악인들과 함께 평소 문화생활을 누리기 힘든 지역에 찾아가 공연하고 공감을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말 강원도 주문진에서 시작해 제주도·평창 등을 거쳐왔다. 이번 음악여행에는 밴드 바이바이배드맨·포헤르츠·24아워즈 등이 동참했다.

전날인 27일에는 밴드들이 도양읍소록도출장소와 소록우체국에서 직원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우체국의 황금희 국장은 “직원이 3명밖에 없는 곳에 와서 공연해줘서 정말 고맙다”며 음료수를 건넸다.

소록도/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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