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의 이수진 작가(왼쪽부터), 주지희 연출가, 이나오 작곡가가 지난 2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에서 활짝 웃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 만든 3인방
이나오 곡·이수진 글·주지희 연출
신여성 동성연인 투신사건 무대에
“파릇파릇한 사랑과 갈망 이야기” 두 여자가 달려오는 기차에 함께 뛰어든다. 몇 시간 전, 다정히 손을 잡고 설렌 가슴으로 밤산책을 하던 두 사람이다. <콩칠팔 새삼륙>이란 독특한 제목의 창작 뮤지컬은 1931년 4월, 당시 경성의 영등포역에서 실제로 일어난 ‘홍옥임·김용주 전차 투신 사건’을 다룬다. 작곡가 홍난파의 조카이자, 의사 홍석후 박사의 딸인 홍옥임과 재력가의 맏며느리 김용주는 절친한 여고 동창생이자 연인 사이로 알려졌다. 4월의 목련처럼 피자마자 져버린 스무 살 두 여자의 사랑을 뮤지컬로 풀어낸 세 여자 이나오(31) 작곡가, 이수진(41) 작가, 주지희(33) 연출가를 2일 서울 신당동 충무아트홀에서 만났다. ‘콩칠팔 새삼륙’은 ‘남의 일에 이러쿵저러쿵 떠든다’는 뜻의 옛 우리말이자, 홍난파가 조카 홍옥임이 쓴 동시를 보고 작곡한 동요 제목이기도 하다. ■ 특별하지 않은 그냥, 사랑 이야기
2008년, 미국 뉴욕에서 뮤지컬 음악을 공부하던 이나오 작곡가가 “한국적인 이야기를 찾다가” 홍옥임과 김용주의 사연을 발견한 게 작품의 출발이었다. 역시 뉴욕에서 뮤지컬을 공부하면서 가깝게 지낸 이수진 작가와 이듬해 서울에서 만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이 작가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파릇파릇하고 순수한 사랑”을 그릴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여자들끼리의 사랑이라서 특이하거나 특별하게 본 게 아니라, 가장 감수성이 풍부한 시절에 경험한 사랑의 기쁨과 좌절의 아픔에 주목했다는 설명이다. 이나오 작곡가도 “동성애가 획기적이거나 파격적인 소재라고 보진 않았고, 갈망하는 걸 이루지 못하는 내면적인 갈등”을 노래 속에 담았다고 말한다. <콩칠팔 새삼륙>은 “사회적인 발언을 목표로 한 게 아니라”(이나오 작곡가) 그 상대가 이성이건 동성이건 누구나 해 봤을 ‘그냥, 사랑’ 이야기다.
■ 단비처럼 찾아낸 ‘여자’ 연출가
주지희 연출가는 지난해 합류했다. 이 작곡가와 이 작가가 처음부터 여자 연출가를 찾았던 건 아니었다. “여자 이야기지만, ‘남자의 시각을 포함시키는 게 어떨까’ 생각을 하고 남자 연출가 몇 분을 만났죠. ”(이수진 작가) 하지만 두 사람이 잡아 놓은 이야기의 얼개와 남자 연출가들의 시각 사이엔 괴리가 컸다고 한다. “소재를 듣고 난감해하시기도 했고, 우리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남자 인물이 중심이 돼 극을 끌고 갔으면 하시더라고요. 옥임의 약혼자인 유씨의 입장을 강조한다든지, 대본엔 없는 홍난파를 등장시켜서 이야기를 끌고 나갔으면 좋겠다라든지 하는 말씀들을 듣고 ‘생각이 다르구나’란 걸 느꼈어요.”(이수진 작가) 두 사람은 우연히 소개받은 주 연출가를 만나고는 “마침내 벽에 부딪히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주 연출가도 처음엔 “(동성애에 대해) 잘 모르는데”란 걱정을 하기도 했다. 주 연출가는 “사랑하는 스무 살 두 여인이 자살을 택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를 고민하면서 둘의 심리 묘사에 집중했다”고 말한다. ■ 신여성과 된장녀
2012년의 관객 앞에 1931년 여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근거는 이 작가의 말대로라면 “81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사회가 여자를 대하는 평가의 잣대”에서 나온다. 여성학의 연구 주제인 신여성 담론과도 궤를 같이하는 문제의식이다. “짧은 머리에 종아리를 드러낸 ‘모던걸’을 비난하던 상황은 지금 ‘된장녀’에게 손가락질하는 모습과 차이가 없죠. 그리고 연애가 끝났을 때, 그에 대한 책임도 여자에게 더 많이 부여되잖아요.” 동성애가 대안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자유연애가 아니라, 자기 의지대로 하는 ‘진짜 자유연애’를 갈망하던 1931년 옥임의 마음가짐은 지금도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갈망하는 2012년 여자들의 의식과 닮았다고 봐요.” 옥임과 용주가 자살한 직후, 일제는 유화적인 문화통치에서 강경한 민족말살통치로 노선을 바꾼다. <콩칠팔 새삼륙>은 “억압 가운데 그나마 일부 계층은 자유를 누릴 수 있던 마지막 시절”(이 작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주 연출가) “역사 속에서의 아웃사이더로 살았던 개인의 복잡한 내면”(이 작곡가)이 구슬픈 발라드와 ‘뽕끼’가 밴 음악이 흐르고 붉은 계열 색감이 따뜻하고 다정하게 펼쳐지는 무대에서 살아난다. 다음달 5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블루. (02)2230-6601.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모비딕프로덕션 제공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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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희 연출가는 지난해 합류했다. 이 작곡가와 이 작가가 처음부터 여자 연출가를 찾았던 건 아니었다. “여자 이야기지만, ‘남자의 시각을 포함시키는 게 어떨까’ 생각을 하고 남자 연출가 몇 분을 만났죠. ”(이수진 작가) 하지만 두 사람이 잡아 놓은 이야기의 얼개와 남자 연출가들의 시각 사이엔 괴리가 컸다고 한다. “소재를 듣고 난감해하시기도 했고, 우리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남자 인물이 중심이 돼 극을 끌고 갔으면 하시더라고요. 옥임의 약혼자인 유씨의 입장을 강조한다든지, 대본엔 없는 홍난파를 등장시켜서 이야기를 끌고 나갔으면 좋겠다라든지 하는 말씀들을 듣고 ‘생각이 다르구나’란 걸 느꼈어요.”(이수진 작가) 두 사람은 우연히 소개받은 주 연출가를 만나고는 “마침내 벽에 부딪히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주 연출가도 처음엔 “(동성애에 대해) 잘 모르는데”란 걱정을 하기도 했다. 주 연출가는 “사랑하는 스무 살 두 여인이 자살을 택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를 고민하면서 둘의 심리 묘사에 집중했다”고 말한다. ■ 신여성과 된장녀
2012년의 관객 앞에 1931년 여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근거는 이 작가의 말대로라면 “81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사회가 여자를 대하는 평가의 잣대”에서 나온다. 여성학의 연구 주제인 신여성 담론과도 궤를 같이하는 문제의식이다. “짧은 머리에 종아리를 드러낸 ‘모던걸’을 비난하던 상황은 지금 ‘된장녀’에게 손가락질하는 모습과 차이가 없죠. 그리고 연애가 끝났을 때, 그에 대한 책임도 여자에게 더 많이 부여되잖아요.” 동성애가 대안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자유연애가 아니라, 자기 의지대로 하는 ‘진짜 자유연애’를 갈망하던 1931년 옥임의 마음가짐은 지금도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갈망하는 2012년 여자들의 의식과 닮았다고 봐요.” 옥임과 용주가 자살한 직후, 일제는 유화적인 문화통치에서 강경한 민족말살통치로 노선을 바꾼다. <콩칠팔 새삼륙>은 “억압 가운데 그나마 일부 계층은 자유를 누릴 수 있던 마지막 시절”(이 작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주 연출가) “역사 속에서의 아웃사이더로 살았던 개인의 복잡한 내면”(이 작곡가)이 구슬픈 발라드와 ‘뽕끼’가 밴 음악이 흐르고 붉은 계열 색감이 따뜻하고 다정하게 펼쳐지는 무대에서 살아난다. 다음달 5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블루. (02)2230-6601.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모비딕프로덕션 제공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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