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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몸으로 쓰는 ‘백색’의 시…마치 허공이 지상인듯

등록 2012-07-19 20:30수정 2012-07-19 20:37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지젤> 공연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지젤> 공연
리뷰 l ABT 발레 ‘지젤’
지젤과 알브레히트 2인무
최고의 하이라이트 무대
어두운 숲속, 결혼 전에 한을 품고 죽은 처녀들의 혼령인 윌리들이 지젤(줄리 켄트)과 알브레히트(마르셀로 고메스)를 둘러싸고 있다. 지젤은 윌리들의 여왕 미르타에게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연인 알브레히트를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차가운 여왕의 마음을 돌리려고 정령(지젤·윌리)과 인간(알브레히트)이 추는 춤은 차라리 몸으로 쓰는 백색의 시에 가깝다. 이미 죽어서 지상에 속하지 않는 존재인 지젤의 마치 허공에 떠다니는 듯한 춤에 결국 관객들은 “역시 줄리 켄트!”라는 낮은 탄성을 뱉어냈다.

2008년 이후 4년 만에 한국 관객을 다시 찾은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지젤> 공연이 18일 저녁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그 첫 막을 올렸다. 이날 지젤 역의 발레리나 줄리 켄트는 발레리노 마르셀로 고메스와 한국 첫 공연의 호흡을 맞췄는데, 무용수로서는 은퇴를 바라볼 40대 중반의 나이지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련함으로 안정적인 1막을 이끌었다. 귀족이라기보다는 끼 많은 남미 남성의 면모를 보여준 마르셀로 고메스와 꽃잎을 뜯어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꽃점을 치며 사랑을 시작하는 장면은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1막에서 ‘페전트 파드되(포도 수확축제의 왕과 여왕으로 뽑힌 농부 한 쌍이 추는 2인무)’ 커플은 발레 영화 <블랙 스완>에서 내털리 포트먼 대역으로 춤을 춘 발레리나 사라 레인과 남다른 테크닉의 소유자인 발레리노 다닐 심킨이었다. 다닐 심킨은 높은 점프와 완벽한 밸런스로 관객들의 환호를 끌어냈으며, 사라 레인도 1막에서 돋보이는 연기를 보여줬다. 지젤과 알브레히트 사이에서 삼각의 한 축을 차지한 힐라리온 역의 발레리노 젠나디 사벨리예프는 사랑에 빠진 악역 캐릭터에 풍부한 표정연기로 생명을 불어넣었다. 1막의 정점인 지젤이 실연의 상처로 미쳐서 죽어가는 ‘매드 신’이 담백하게 그려져 드라마를 끌어올리지 못한 점은 아쉬움을 남겼다.

1막이 이승의 복잡다단한 드라마가 중심이라면, 2막에서는 코르드발레(군무) 중심으로 저 세상의 정령들이 보여주는 낭만발레의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2막의 생생한 나무 숲 사이로 빠른 파드부레(발끝으로 이어지는 종종걸음)와 함께 등장한 미르타 역의 질리안 머피는 강하고 당찬 윌리 여왕의 면모를 발휘했다. 무덤에서 나온 새내기 윌리 지젤이 가슴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윌리들 앞에서 보여준 줄리 켄트의 창백한 아름다움은 그가 왜 ‘지젤의 대명사’로 불리는지 설명해주었다. 이어 미르타 여왕과 윌리들에게 알브레히트를 살려 달라며 추는 지젤의 춤은 한 서린 처녀귀신들도 감동시키기에 충분해 보였다. 단연코 2막에서 지젤과 알브레히트가 보여준 ‘그랑파드되’(두 주역이 추는 2인무)는 이날 밤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

주역급 솔리스트들의 기량이 두드러진 공연이었던 반면 미국 발레의 특성답게 우아함이 다소 부족했고, 2막 코르드발레(군무)의 완성도는 주역 무용수들에 비해 다소 떨어졌다. 그렇지만 2막에서 줄리 켄트와 마르셀로 고메스, 질리언 머피 등의 호연으로 지젤의 정수가 잘 살아나 큰 박수를 받기에 부족함 없는 공연이었다. 프라임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가장 긴장된 순간인 2막 ‘그랑파드되’의 지젤 독무 부분에서 바이올린 솔로의 음이탈로 이어지기도 해 아쉬움을 남겼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지젤>은 22일까지 이어진다.

황보유미/무용칼럼니스트 ym.hwangbo@gmail.com, 사진 더에이치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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