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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평화로 하나되길 꿈꾼 ‘레게 전설’ 밥 말리

등록 2012-07-24 20:11

밥 말리
밥 말리
서정민의 음악다방
요즘처럼 뜨거운 태양과 푸른 바다의 계절에는 레게 음악이 더 자주 들려온다. 레게는 밝고 낙천적인 음악이기도 하지만, 본디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는 저항의 노래 성격이 강하다. 그 중심에는 레게의 전설 밥 말리(사진)가 있다. 지난 20일 그의 삶과 음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말리>(8월2일 개봉) 시사회에 다녀왔다.

영화는 카리브해 섬나라 자메이카의 작은 시골 마을을 비추며 시작한다. 그곳에서 어린 밥 말리는 ‘붉은 애송이’로 불렸다. 자메이카를 통치하던 영국 군인인 백인 아버지와 자메이카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피부색 탓이었다. 아버지 얼굴은 몇번 보지도 못하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철저한 흑인 중심 사회에서 그는 “놀림을 넘어 배척”을 당했다.

12살 되던 무렵, 어머니와 수도 킹스턴의 빈민촌 트렌치타운으로 이주했다. 가난과 절망의 그림자가 짙은 그곳에서 그는 음악을 탈출구로 삼았다. 17살에 첫 음반을 녹음했고, 이듬해인 1963년 빈민가 청년들과 밴드를 결성했다. 이름은 ‘울부짖는 사람들’을 뜻하는 ‘웨일러스’로 정했다. 그는 훗날 “어떻게 노래를 시작하게 됐나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울음. 그래요. 울음과 함께 시작됐죠.”

1962년 자메이카 독립 이후 서양음악과는 다른 독자적 리듬의 댄스음악 스카가 유행했다. 웨일러스는 스카 리듬을 좀더 느리고 묵직하게 바꾼 레게에 진중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 밥 말리는 흑인 해방 사상을 표방한 종교 라스타파리언교에 심취했다. 그의 상징이 된 드레드록(땋은 머리) 스타일도 머리카락을 자르는 건 물론 심지어 빗질까지 금한 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메이카는 양대 정당의 극심한 좌우 대립으로 얼룩졌다. 폭력과 살인이 빈번했다. 밥 말리는 1976년 총선 열흘 전날 자선공연을 하려다가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당했다. 팔만 다치고 목숨을 건진 그는 위험하다는 주변 만류를 뿌리치고 무대에 올랐다. 8만여명의 시민들이 환호했다. 이후 신변에 위험을 느낀 그는 영국 런던으로 건너갔다. 망명 생활을 하던 중 고국에서 연락이 왔다. 거의 전쟁까지 치달은 최악의 상황에서 중재자로 나서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가 ‘원 러브 피스 콘서트’를 열었다. 정적인 총리와 야당 지도자를 무대로 불러내 손을 잡게 하고 노래했다. “우린 하나가 돼야 해.” 사태는 잦아들었다.

1981년 36살 나이에 온몸에 퍼진 암세포로 세상을 떠난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예요. 흑인, 백인, 황인…, 인류가 다 함께 사는 것.” 영화는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 곳곳에서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듣고 부르는 모습, 그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벽과 티셔츠 따위를 비추며 마무리된다. 인류를 하나 되게 하려는 그의 꿈은 지금도 진행형인 셈이다.

시사회장을 나오던 길에 2008년 여름을 떠올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당시, 물대포가 처음 등장한 그날 새벽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밥 말리의 대표곡 ‘노 우먼, 노 크라이’를 청년들이 기타를 치며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노래를 따라했다. 밥 말리는 그렇게 이 땅에서도 살아 있다.

서정민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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