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의 음악다방
이것은 차라리 세계 최고 수준의 록 페스티벌이다. 지난 13일 새벽 5시부터 눈을 비비며 텔레비전을 켰다. 영국 아르앤비·솔 가수 에밀리 산데가 ‘리드 올 어바웃 잇’을 부르며 런던올림픽 폐막식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곧이어 영국의 보물 비틀스의 곡 ‘비코즈’를 합창단이 불렀다. 이어서 흐르는 영국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엘가의 ‘사랑의 인사’. 첫 세 곡만으로 영국 음악의 19·20·21세기를 축약한 셈이다.
영국은 유럽 대륙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클래식이라 불리는 고전음악이 번성한 나라는 아니다. 따지고 보면 현대 대중음악의 뿌리도 미국에 있다. 미국 흑인노예들의 노동요 블루스에서 재즈와 리듬앤블루스·로큰롤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영국은 20세기 이후 현대 대중음악, 특히 록 음악 분야에서 엄청난 업적을 이뤘다. 비틀스를 비롯해 롤링스톤스, 레드제플린, 딥퍼플, 블랙사바스, 퀸, 핑크플로이드 등 웬만한 전설은 죄다 영국 출신이다. 아델, 콜드플레이 등 최근 세계 음악시장을 주름잡는 이들도 영국 출신이 많다.
그러니 영국이 올림픽 폐막식을 ‘영국 음악의 대향연’(사진)으로 꾸민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이미 세상을 떠난 비틀스의 존 레넌과 퀸의 프레디 머큐리를 소환하고, 살아 있는 전설 후, 펫샵보이스와 큰 병을 앓고 돌아온 조지 마이클, 뮤즈, 오아시스의 후신인 비디아이를 이번 폐막식이 아니면 어찌 한무대에서 볼 수 있었겠는가? 신예 가수 제시 제이와 퀸이 협연하는 ‘위 윌 록 유’를 8만 관중이 따라부를 때의 전율이란! 5년 만에 다시 모인 걸그룹 스파이스걸스와 1990년대를 풍미했던 보이그룹 테이크댓의 등장도 반가웠고, 최근 떠오르고 있는 보이그룹 원디렉션의 무대는 싱그러웠다. 아이돌 팝부터 록·아르앤비·일렉트로닉·힙합까지 시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음악의 향연을 펼친 영국의 문화적 자산이 부러웠다.
문득 지금 우리나라에서 올림픽 폐막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상당 부분을 케이팝 열풍의 주역인 아이돌 가수들이 장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씁쓸했다. 국내 아이돌 음악을 폄훼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다양성이다. 아이돌 가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중계하는 언론매체들은 음지에서 묵묵히 자신의 음악을 하는 이들에겐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 대중의 관심도 아이돌에만 몰릴 수밖에.
그나마 희망의 끈을 지난 10일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열린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톱밴드2> 8강전 현장에서 발견한 게 위로였다. 밴드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역량을 펼쳐 보였고, 관객들은 애정을 꾹꾹 눌러담은 환호성을 질렀다. 시청률이 저조하다고는 해도 인디밴드들의 무대를 지상파 방송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톱밴드2>에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끝까지 기대를 버릴 수 없는 이유다.
이날 특별무대는 특히 감동스러웠다.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윤철 형제가 기타를 잡고, 막내 석철은 드럼 스틱을 잡았다. 송홍섭이 베이스를 치고, 유영석이 키보드를 연주했다. 마이크는 김경호가 잡았다. 이름 그대로 ‘슈퍼 세션’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도 남부럽지 않은 수많은 전설이 있다. 아이돌 홍수에 휩쓸려 잠시 잊고 있었을 따름이다. 우리만의 올림픽 폐막식 무대를 짜보는 놀이를 해봐야겠다.
서정민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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