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l 마틴 맥도너 연극 ‘필로우맨’
옛날 옛적에 한 남자가 살았다. 그는 키가 3m나 되고 온몸은 크고 작은 분홍색 베개로 이루어진 ‘필로우맨’이다. 그는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찾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도와주는 일을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미래에 닥칠 고통과 끔찍한 인생을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 끔찍한 동화를 쓴 작가 카투리안(김준원)과 지적장애가 있는 그의 형 마이클(이현철)은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취조실에 끌려온다. 그가 쓴 동화와 똑같은 방법으로 어린이를 죽이는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노련하고 냉정한 형사반장 투폴스키(손종학)와 주먹이 앞서는 폭력 형사 에리얼(조운)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호소하는 카투리안을 고문하며 자백을 강요한다.
11일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무대에 오른 마틴 맥도너 원작의 연극 <필로우맨>(연출 변정주)는 잔혹 동화에 숨어 있는 비밀을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풀어간다. 아동 학대를 소재로 삼아 7가지 엽기적인 동화를 썼다는 이유로 아동 연쇄 살인 사건에 얽힌 작가 카투리안과 그의 형 마이클, 그리고 그들을 취조하는 형사들의 진실 공방과 두뇌싸움으로 2시간20분의 공연을 채웠다. 살인 사건을 취조하는 전체의 흐름에 주인공 카투리안이 죽음을 감수하며 지키려고 했던 잔혹하면서도 매혹적인 이야기들을 적절하게 엮으면서 인간 세상의 어두운 면을 담아냈다. 추리 스릴러답게 처음부터 긴장과 공포, 위트가 이어지다가 후반에 이르면 두 형제의 어린 시절에 관한 비밀과 현재의 범행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형사 에리얼의 과거가 얽힌 반전이 일어나면서 슬픔과 연민이 잔잔하게 밀려온다. 극중극의 효과, 반전, 공포와 위트의 배분에 능란해 영국 연극계가 21세기형 천재 예술가로 추어올리는 마틴 맥도너의 마법이다.
<필로우맨>은 2007년 박근형 연출과 최민식(카투리안), 윤제문(마이클), 최정우(투폴스키), 이대연(에리얼)씨의 연기 조합으로 국내 초연했다. 당시의 엘지아트센터에 견줘 소극장 스페이스111은 무대는 작고 소박하지만 밀도감과 집중도는 오히려 높은 듯하다. 지루해지기 쉬운 긴 호흡의 공연을 적절하게 완급을 조절하며 끌고 나간 손종학씨 등 네 배우의 연기 내공 덕이다. 극중 이야기를 주인공 카투리안을 무대 위 스토리텔러로 등장시켜 풀어나가고,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섞은 영상을 통해 무대 위에 구현시킨 변정주 연출가의 감각도 돋보인다. 무대 세트를 최소한으로 하되 상상력을 자극하는 서류장·캐비닛 같은 오브제를 배치해 마치 취조실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준 무대 디자인도 인상적이다. 9월15일까지. (02)744-4334.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노네임씨어터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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