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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대원군 별장 석파정, 미술관 옷을 입다

등록 2012-08-22 20:02

서울 부암동 석파정
서울 부암동 석파정
인왕산 자락에 정원 아름다워
한국전 뒤 고아원·병원 쓰이다
유니온그룹 안병광 회장이 매입
서울미술관 탈바꿈 28일 공개
이중섭 등 5인 회고전 열어

인왕산 자락 거대한 바위와 아름다운 계곡, 그 속에 그림 같은 정자가 숨어 있는 서울 부암동 석파정(사진)은 본디 조선 철종 때 영의정까지 지낸 당대의 세도가 김흥근의 별장이었다. 이 경치 좋은 별장은 훗날 흥선대원군의 것으로 바뀌게 된다. 대원군은 김흥근에게 이곳을 팔라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아들 고종과 함께 이곳을 찾아가 묵었고, ‘임금이 묵은 곳은 신하가 살 수 없다’는 이유에 따라 김흥근은 결국 대원군에게 자기 별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석파정은 조선 왕조가 망한 뒤 심한 운명의 부침을 겪었다. 왕족 소유에서 한국전쟁 이후 고아원, 병원 등으로 쓰이다가 민간 소유가 됐고, 자주 경매에 나와 여러 차례 임자가 바뀌면서 오랫동안 문이 닫혀 있었다. 이 석파정이 미술관으로 다시 탄생해 드디어 일반에 공개된다.

이중섭의 <황소>
이중섭의 <황소>

이중섭의 ‘황소’가 탄생시킨 미술관
석파정을 소유한 석파문화원은 신축 미술관과 이 일대를 묶어 28일 서울미술관이란 이름으로 개장한다. 이 문화원은 안병광(54) 유니온약품그룹 회장이 운영하는 곳으로, 새로 지은 미술관은 전시 공간이 모두 500평에 이른다. 국내 사립미술관으로는 삼성미술관 리움 다음으로 큰 규모다.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술애호가인 안병광 회장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출발해 연 매출 3000억원에 육박하는 의약품 유통업체 유니온약품그룹을 일으킨 기업가다. 작품 값이 비싼 화가로 꼽히는 이중섭의 그림만 30여점을 모은 컬렉터인데, 그가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이중섭의 대표작 <황소>였다. 1983년 제약회사 영업사원 시절 명동의 한 액자가게 처마 아래에서 잠시 비를 피하던 그는 창밖에서 이중섭의 <황소>를 인쇄한 그림을 보고 가게에 들어가 복제 프린트 그림을 샀다. 그리고 아내에게 선물로 주면서 “언젠가 진짜 황소 그림을 선물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이후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안 회장은 수십년 뒤 그 꿈을 이뤘고, 2006년 석파정을 인수해 대형 미술관까지 세웠다.

서울미술관은 문화재인 조선 시대 전통 가옥들과 인왕산의 빼어난 풍광, 그리고 현대식 미술관이 어우러지는 보기 드문 미술 공간이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그윽한 숲과 아름다운 정원이 조화를 이루고, 숲길 곳곳에 중국풍 정자와 기암괴석, 계곡이 이어진다. 미술관 입장료를 내야 관람할 수 있지만 석파정이 비로소 제대로 관리가 되면서 관객들을 만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박고석의 <소>
박고석의 <소>

그 시절 그 다방에 모였던 그들
서울미술관은 개관 전시로 ‘둥섭, 르네상스로 가세’를 마련했다. ‘둥섭’은 이중섭의 이름 중섭을 말하는 서북 사투리로 이중섭은 ‘둥섭’이란 사인을 즐겨 썼다. ‘르네상스’는 이중섭이 1952년 한국전쟁 시기 부산 피난 중에 한묵·박고석·이봉상·손응성 화백 등과 함께 전시회를 열었던 ‘루네쌍스 다방’을 뜻한다. 훗날 한국 미술계의 거목이 된 이 5명의 작가들은 전쟁이 한창이었던 1952년 열악한 상황속에서도 부산 르네상스 다방에서 ‘기조전’을 열었다. 서울미술관은 이 전시회가 열린 지 꼭 60년을 기념해 가장 열악한 시절에도 미술혼을 불태웠던 한국 현대미술의 주역들을 기리는 전시를 기획했다.

주요 출품작은 2010년 36억5000만원에 낙찰돼 이중섭 작품 중 역대 최고가이자 박수근의 <빨래터>(45억2000만원)에 이어 한국 경매사상 두번째로 높은 가격을 기록했던 <황소>(1953년께 작품으로 추정), 이중섭의 또다른 1950년대 작품 <길 떠나는 가족>, 좀처럼 관객들이 만나기 어려웠던 이봉상의 작품들, 그리고 ‘산의 화가’로 유명한 박고석의 미공개 추상화 등도 함께 공개한다. 당시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해 전시장 한켠에는 르네상스 다방을 재현하는 공간도 설치해 1950년대 전쟁통에 갤러리 구실을 했던 당시 다방의 문화사적 의미도 고찰한다. 어른 9000원, 청소년 이하 5000원, 29일부터 11월21일까지. (02)395-0100.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도판 서울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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