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숙선(63·국립창극단 원로단원,왼쪽) 명창과 그의 딸이자 거문고 연주자 최영훈(36·국립창극단 기악부 단원)씨
“소리 힘들어 안 가르쳤는데 거문고 병창 한무대 서네요”
“엄마 회초리 맞아가며 배워 즐기는 마음으로 봐 주세요”
“엄마 회초리 맞아가며 배워 즐기는 마음으로 봐 주세요”
최고의 가객 안숙선(63·국립창극단 원로단원·사진 왼쪽) 명창과 그의 딸이자 거문고 연주자인 최영훈(36·국립창극단 기악부 단원·오른쪽)씨가 한 무대에 선다. 30일과 31일 이틀 동안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펼쳐지는 ‘모전여전-소릿길에서 만나다’ 공연. 국립극장이 지난해부터 마련한 ‘국립예술가 시리즈’의 열번째 작품이다. 국립창극단의 선후배이자 가야금 명인 강순영(안숙선씨의 이모), 동편제 거목 강도근(안씨의 외당숙) 명창 등을 배출해낸 소문난 국악 명가의 후예로 한길을 걸어온 모녀의 국립극장 첫 공식 데뷔 무대이다.
그러나 모녀의 ‘공연’은 3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립창극단 시절이던 1980년 10월에 창극단이 국립극장 소극장(현 달오름극장)에서 정기공연으로 <최병도전>을 했어요. 허규씨가 연출을 하고 조상현씨가 최병도 역을, 남해성씨와 오정숙씨가 그 아내 역을 맡고 제 스승이신 박귀희 선생이 작창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엑스트라에다 사당패의 상쇠 역을 했어요. 무대 뒤에서 제 순서를 기다리는데 이 애가 안 떨어지려고 울고 누워버리는 거예요. 겨우 한농선(한귀례) 선생께 꼭 붙잡고 있으라고 부탁하고서는 꽹과리를 땅땅 치면서 무대 중앙에 나가는데 ‘엄마, 엄마~’ 하고 울면서 무대로 나와버렸어요. 사람들이 전부 웃고,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요.”(안숙선)
“제 기억으로는 어머니는 늘 주역이었어요. 그래서 함께 있는 시간이 적어서 더욱 안 떨어지려고 했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가끔씩 말씀하시지만 제가 네살 때 일이라서 기억나질 않아요. 반대로 제 딸이 나왔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해요. 그러니까 제가 32년 전에 조상현·남해성·오정숙·박귀희 선생 등 기라성 같은 분들과 함께 국립극장에서 데뷔를 하고 이번이 복귀무대인 셈이네요.”(최영훈)
공연을 앞두고 지난 24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앞에서 만난 모녀는 지난날 숨은 사연을 들려주며 활짝 웃었다.
어머니 안숙선 명창은 “소리는 워낙 힘든 일이어서 딸에게 거문고를 시켰는데 이렇게 거문고 병창으로 한 무대에 설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자 딸 최영훈씨도 “어렸을 때는 멋모르고 간혹 무대에 나갔는데 나이가 들어서 음악을 좀더 알고 나서 어머니와 한 무대에 서려니까 떨린다”고 털어놓았다.
‘모전여전-소릿길에서 만나다’는 어머니 안 명창이 음악감독을 맡고 딸 최씨가 연주자와 가객으로 나선다. 1부는 최씨의 웅숭깊은 거문고 연주 무대로 거문고 산조, 창작 독주곡 초연, 거문고 병창으로 꾸며지며, 2부는 안 명창의 오랜 레퍼토리가 최영훈의 소리로 재현된다. 가야금 병창의 대표적인 두 곡 ‘호남가’와 ‘가자 어서 가’를 안씨가 거문고 특유의 음색인 중저음에 맞춰 편곡했다.
모녀의 병창 무대도 선보인다. 김덕수 사물놀이패, 세계적 재즈그룹 레드선과의 협동 공연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안 명창의 ‘토끼 이야기’와 슬픔을 흥으로 풀어내는 ‘흥타령’을 함께 부른다. 안 명창은 가야금을 타고 최씨는 거문고를 타며 병창한다.
그런데 딸은 왜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 보유자이자 판소리 명창인 어머니와 달리 거문고를 선택했을까?
“어머니가 판소리를 못하게 했어요. 국악고 1학년 때 거문고 소리를 처음 들었는데 중저음의 악기가 ‘슬기둥’ 하는데 정말 매력이 있는 거예요. 제 손이 단단해서 거문고에 딱 어울린다고 했어요.” 최씨는 “어린 아이였지만 판소리와 가야금은 바로 옆에 명인이 있으니까 언제든지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안 명창도 “딸이 침착하고 대담한 성격이라 거문고에 잘 맞은 것 같다”며 “내가 못하는 악기를 했으니까 주눅 들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거문고는 제 전공이니까 마음을 담아서 진솔하게 하겠지만 노래는 전문 소리꾼이 아니니까 즐기는 마음으로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준비하면서 긴장감도 컸지만 정말 즐거웠거든요. 옛날에 제가 엄마한테 배우면서 회초리와 북채로 맞고 혼나고 다시 하는 과정을 상상하시면서 재미있게 봐주세요.”(최영훈)
“몇해 전부터 딸에게 소리와 가야금 병창을 가르치는데 상창이 잘 나오고 소리 가는 길을 잘 알더라고요. 아차, 어렸을 때부터 시켜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옛날에는 명창도 나이 서른에 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손주들도 다 커가니까 앞으로 10여년 더 가르쳐 볼 생각입니다.”(안숙선)
모녀는 앞으로 작은 실내악단을 꾸려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어볼 계획이다. 민요나 판소리의 중요한 대목들을 골라 들려주고,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국악 레퍼토리를 발굴해서 귀 명창을 늘리고 싶다고 했다. (02)2280-4114~6.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국립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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