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환 작가의<태극기 그리고 나>
신음소리 점점 커지다
화면 툭 꺼지는 ‘태극기…’
더러운 도시 하천에서
한가롭게 즐기는 ‘낚시’
기괴함·어색함 등 통해
불안한 한국 사회 비춰
화면 툭 꺼지는 ‘태극기…’
더러운 도시 하천에서
한가롭게 즐기는 ‘낚시’
기괴함·어색함 등 통해
불안한 한국 사회 비춰
아르코미술관 ‘플레이그라운드’
“어흑, 어흐흐….”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전시장 안에선 뜻밖에도 신음소리가 울려퍼진다. 진원지는 전시장 한쪽 구석 어두운 방. 벽에 비치는 영상은 화면을 삼등분한 태극기뿐인데, 같이 들리는 신음소리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음은 거의 울음으로 바뀌고, 화면은 갑자기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끝나버린다.
오인환 작가의 작품 <태극기 그리고 나>는 작가가 국기게양대에 나부끼는 고고한 국가의 상징 태극기를 무거운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은 영상이다. 버틸수록 팔의 힘은 빠지고 작가의 입에선 고통스런 괴성이 터져나온다. 결국 작가는 카메라를 떨어뜨리고 만다. 영상은 거기까지, 작품도 거기에서 끝.
기괴한 신음이 울려퍼지는 아르코미술관의 기획전 ‘플레이그라운드’는 분위기가 묘한 전시회다. 작품 하나하나는 기발한데 보고 있으면 기분이 모호해진다. 조명도 일부러 어둡게 했다. 왠지 불안감이 느껴진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전시회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포착했다. 이 전시회는 ‘불안’이 주제이기 때문이다.
“불안은 공포와는 다릅니다. 공포는 명확한 대상이 있죠. 하지만 불안은 대상이 불분명해요. 지금 2012년 하반기를 사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미래가 안 보여서라고 생각해요.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 양극화 문제,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갈등 속에서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미술의 눈으로 보자는 취지입니다.” 전시를 기획한 고원석 큐레이터의 말이다.
전시 작품들은 그러나 작품 자체로 불안감을 표현하지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유 모를 어색함과 불편함, 파악하기 어려운 모호함 등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는 것이 고 큐레이터의 설명이다. 겉으로는 불안을 감추는 것, 그게 지금 한국의 풍경이란 것을 작품들은 보여주고 있다.
공성훈 작가의 <낚시>는 아마도 이 전시의 ‘느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일 듯하다. 멀리 고압 송전탑과 높은 아파트가 보이는 강가, 한 사람이 한가롭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해질녘 놀빛으로 하늘이 아롱지고 강물이 그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모습은 목가적 정경과 도시적 풍경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풍경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좀더 들여다보면 어딘가 어색해 의문을 품게 된다. 정말로 이곳이 낚시를 할 만한 곳인가? 잘 보면 더러운 도시 하천에서? 아름다움과 기괴함이 공존하는 공 작가의 그림들은 지금 우리 도시의 풍경에 대해 되묻게 만든다.
<화자>와 <청자>라는 두 작품이 짝을 이뤄 하나가 되는 최수앙 작가의 조각 작품은 명쾌하면서도 묵직하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란 제목이 조건반사적으로 소통을 떠올리게 하지만, 정작 화자와 청자 사이의 거리는 실로 멀다. 말하는 이는 뭔가 강하게 이야기하는데, 듣는 이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경직된 표정. 두 사람의 얼굴은 흐릿하게 처리하고 화자의 입과 청자의 귀만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도드라지게 묘사했다.
가장 불안한 공간인 원자력발전소 부근의 일상적이고 평안해 보이는 풍경을 찍은 정주하씨의 사진, 시멘트로 만든 화분을 모아 자연과 인공 사이의 불안한 경계를 보여주는 임선이씨의 조각, 암실 속에서 심호흡 소리를 들려주는 육태진씨의 영상과 미군 기지의 도시 동두천 공동묘지 무연고자 묘역을 찍은 김상돈씨의 영상, 텁텁한 색조로 밀실을 묘사한 노충현씨의 회화, 자연의 소리와 관객들이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소리가 충돌하면서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내는 김기철씨의 소리 조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를 미술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느껴볼 수 있는 전시다. 9월28일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무료. (02)760-4850~2.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도판 아르코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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