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축구’ 패자는 목을 바치라…마야인에게 죽음이란?

등록 2012-09-09 19:48

국립중앙박물관 ‘마야 2012’전
공을 놓고 선 목없는 선수상
사람 심장 바쳤던 봉헌구 등
신과 영혼, 죽음의 의미 짚어
3천년 번영 문명기 오롯이
중남미의 고대 마야인들이 가장 즐겼던 스포츠는 원시적 축구의 일종인 ‘피찰’이라는 공놀이였다. 특히 귀족과 왕이 참관하는 이른바 ‘빅게임’일 경우 패자는 죽어야 하는 무시무시한 규칙이 있었다. 대형 경기장에서 승부에 진 팀의 대표 선수들은 목이 베어져 신 앞에 제물로 바쳐졌다. 옥수수로 인간을 빚어낸 쌍둥이 창조신이 지하 세계 ‘시발바’의 죽음의 신들과 대결을 벌여 희생된 뒤 부활한 것을 재현하려는 의식의 일부가 바로 축구였던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특별전시실에서 지난 4일부터 열리고 있는 ‘마야 2012’ 전시장(10월28일까지)에 가면, 그 섬뜩한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전시장 한가운데 인물상 진열장에는 공을 놓고 선 목 없는 선수상(사진)이 있다. 뜨거운 응원의 열기 대신 종교적 희열 혹은 죽음의 묵직한 중량감 등이 관객들을 짓누르는 듯하다. 그 뒤켠, 가슴에 보호대를 차고 경직된 표정으로 둔중한 공을 굴리는 공놀이 부조판에서도 마야의 축구가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의식이었음을 보여준다.

전시장은 기원전 1500년께부터 도시국가로 일어나 기원후 스페인의 침입으로 멸망하기까지 3000여년 중남미 유카탄 반도 일원에서 번영했던 마야 문명기 주요 유물들을 주제별, 시대별로 보여준다. ‘죽음의 축구’에서 보이듯 시종 죽음의 이미지들이 전시장에 스멀거린다. 처음 들머리에 놓인 사방을 관장하는 ‘태양신 킨’의 향로상과 사람의 심장이나 내장을 제물로 바쳤던 봉헌구인 ‘착몰’ 상, 신의 대리인인 왕의 대접 등에 묘사된 그들의 표정은 모두 경직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나 신상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추상화되고 기호화된 이미지들이 마야의 접시와 석상, 도자기들을 뒤덮는다. 신과 왕을 상징하는 재규어 상과 이빨을 드러낸 귀기스러운 뼈단지의 동물 문양,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뱀 신상 등의 느낌들도 비슷하다.

마야인들의 죽음의 감수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들은 삶과 죽음, 우주, 시간을 훨씬 예민한 눈으로 성찰했다. 동식물은 삶과 세상의 이치를 드러내주고 신과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으로 그들에겐 받아들여졌다. 마야인들은 인간의 사각형 세상의 중심과 모서리에 ‘세이바’ 나무가 서 있고, 13개 층의 하늘과 9개 층의 저승세계 시발바에 다종다양한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생명이 깃든 동식물이야말로 이런 신들의 표상으로 여겨 대접에 세이바 나무를 그리고, 각종 용기에 머리와 다리만 스며들듯 새겨진 동물상을 새겨놓았다. 특히 뼈단지, 조상 등에 보이는 재규어는 태양신이 밤에 변신하는 동물로 죽음의 신들과 싸우고 다음날 부활을 준비한다는 의미에서 각별한 숭배 대상이었다.

멕시코, 과테말라 현지 박물관에서 온 소품 유물 200여점은 죽음과 삶이 갈마드는 자연과 우주의 순환 체제 자체를 상징한다. 죽음은 함께 순환되는 생명의 약동에 대한 관심과 시간에 대한 사유와도 직결된다. 그들이 개발한 정교한 문자와 달력의 이미지들, 뜻과 소리를 나타내는 기호를 함께 결합한 둥글둥글한 표음-표의 문자들이나 5125년 단위로 시대를 나눈(지금 시대를 5시대로 명명하고 올해 12월21일 끝난다고 기록했다) 장주기력 달력 등이 이런 관념들을 전해준다. 경직된 인물 표정이나 추상적인 문자 무늬는 중국 고대 청동기나 일본 고대 무덤토기인 하니와의 이미지와도 흡사해 흥미롭다.

이 전시는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다. 서로 마야문명의 적자임을 주장하며 갈등을 빚어온 과테말라, 멕시코 두 나라의 엇비슷한 전시품들을 들여와 각기 다른 구역으로 떼놓았기 때문이다. 세계관, 신앙 등 주제 중심의 멕시코 전시장과 역사적 변천과정 위주인 과테말라 전시장의 콘셉트가 제각각이라 관람 동선은 헷갈릴 때가 많다. (02)2077-90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노숙소녀 살인사건 7명이 거짓 자백을 했다, 왜?
김기덕, 베니스 황금사자상 받고 “아리랑 아리랑~”
벼룩시장서 50달러에 산 그림이 르누아르 진품 ‘대박’
곤란이가 잘 곳은 어디인가
환상 쫓는 경매시장 ‘개미들’, 호구되기 십상
경매에서 만난 적대적 공생관계, 하우스푸어 vs 하우스리스
[화보] 알록달록 색 입은 가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