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덕수궁 프로젝트’전
전각·후원 등 곳곳 전시장으로
중화전 전체가 스크린으로 변신
고종 침전 재현…궁중소설 낭독
역사의 현장 현대적으로 재해석
전각·후원 등 곳곳 전시장으로
중화전 전체가 스크린으로 변신
고종 침전 재현…궁중소설 낭독
역사의 현장 현대적으로 재해석
덕수궁이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으로 바뀐다. 고종의 한이 서린 함녕전에는 구한말 시절의 온기가 회복되고, 중화전 행각에선 낭랑한 목소리로 궁중 소설이 울려퍼진다. 광해군과 인목대비의 목숨을 건 정치 싸움이 벌어졌던 석어당엔 반짝이는 눈물 조각이, 한때 궁 안에 빼곡히 들어섰던 궐내 각사들이 사라진 연못가 숲속에는 그림자를 활용한 빛의 예술 작품이 들어선다. 궁궐 전각과 숲이 빛과 소리와 조형물과 만나 역사와 예술이 합쳐진 제3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19일부터 서울 덕수궁에서 시작하는 ‘덕수궁 프로젝트’전은 생생한 역사의 현장에서 한국 미술의 오늘을 보여주는 전시다. 현대 미술의 언어가 어떻게 역사를 해석하는지 경험해볼 수 있는 독특한 기획이다. 덕수궁 주요 전각 5곳과 후원 등 9곳에 현대미술 작가들의 설치작품이 들어서고, 석조전 미술관에서도 별도의 작품들과 함께 야외 설치작업과 연관된 영상 작업과 다큐멘터리 등을 함께 전시한다. 문화재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궁궐이 미술작품화하는 것이니만큼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재청이 함께 준비했다.
류재하 작가는 덕수궁의 정전 중화전 전면에 미디어 영상을 쏘고 앞마당 박석에는 레이저 선을 깔아 빛의 예술을 펼치며 시공간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는 작업 <시간>(위 사진)을 선보인다. 전시 기간 중간에 야간에 펼쳐지는데, 중화전의 강렬한 단청 위로 영상이 어리면서 건물 전체가 스크린이 된다.
고종의 침전이자 그가 세상을 떠난 곳인 함녕전을 고른 서도호 작가는 ‘보이지 않는 작품’을 시도했다. 고종이 잠들 때 ‘보료 3채’를 깔았다는 궁녀들의 증언이 작품의 출발점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함녕전을 당시 방식으로 정성껏 청소하고, 새로 도배를 해 고종 시절의 모습으로 재현한다. 그래서 작품은 따로 보이지 않고 “노력의 흔적”만이 남는다. 대신 함녕전과 똑같은 스튜디오에서 찍은 퍼포먼스 영상과 다양한 설치작업을 <함녕전 프로젝트>란 제목으로 묶어 미술관 안에서 전시한다.
정서영 작가는 서양 문물이 들어오던 시기 전통 건축에는 없었던 다양한 디자인을 뒤섞어 동서양 건축을 절충한 휴식 및 담소 공간으로 지은 정관헌을 개념미술 공간으로 바꿨다. 정관헌에 놓여 있던 의자와 탁자를 미술관으로 옮겨 내부를 싹 비운 다음 사운드 아트와 퍼포먼스를 펼친다. 의자와 탁자도 미술관 내부로 옮겨져 작품이 된다. 의자와 탁자 사이에 다각형 유리를 끼워 사물의 용도와 구성, 시공간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의미를 느끼게 만든다.
디자이너 하지훈씨는 함녕전 옆 덕홍전에 반짝거리며 바닥이 동그랗게 솟아오른 모양의 의자(아래 사진)를 깔았다. 원래 명성황후 신주를 모시던 경효전을 한일병탄 뒤 일제가 일본 통치자의 접견 장소인 덕홍전으로 바꾼 역사를 주목해 아름다운 덕홍전이 왜곡과 변형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신기하게 생긴 의자는 앉아보면 의외로 편하고 새로운 느낌을 준다.
시인이자 음악인, 미술작가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팔방미인 성기완씨는 중화전 행각에서 궁중 소설을 낭독해주는 소리 작품을 냈다. 창덕궁 낙선재에서 발견된 낙선재본 소설 중 한글 번역이 된 <화문록>과 <천수석> 중에서도 흥미로운 대목을 아나운서가 읽은 것인데, 의자에 앉아 듣다보면 예상 못한 재미를 느낄 것이라고 전시를 기획한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귀띔했다.
덕수궁 경내 전시는 12월13일까지, 덕수궁 미술관 전시는 10월28일까지. 덕수궁 입장료 1000원, 미술관 입장료 2000원이며 초중고등학생은 모두 무료.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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