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새달 개막 ‘영웅’ 전좌석 5만원 이하
제작사 “가격 부풀려져 관객 떨어져”
뮤지컬 팬들 티켓 앞다퉈 구매 호응
다른쪽 “인건비 올라 값인하 불가능”
“시장 혼란 부추겨” 곱지않은 시선도
제작사 “가격 부풀려져 관객 떨어져”
뮤지컬 팬들 티켓 앞다퉈 구매 호응
다른쪽 “인건비 올라 값인하 불가능”
“시장 혼란 부추겨” 곱지않은 시선도
최근 한 뮤지컬 제작사가 티켓 값 거품론을 제기하고 앞으로 5만원 밑으로 대폭 인하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뮤지컬 업계가 술렁인다. 적정 티켓 가격에 대한 설전과 함께 관객층 확대를 위한 뮤지컬 시장 체질 개선 논의도 나오고 있다.
뮤지컬 <명성황후> 등을 만든 에이콤인터내셔널 윤호진 대표는 지난 14일 창작 뮤지컬 <영웅>의 관람 티켓을 5만원 이하로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영웅>은 다음달 16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막을 올리는 대극장 뮤지컬이다. 윤 대표는 전체 좌석 1547석 가운데 기존 12만원짜리 브이아이피(VIP) 좌석과 10만원·8만원짜리 1·2층 좌석 표를 모두 5만원으로 내리고, 5만원에 팔던 3층 좌석은 3만원에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5만원짜리 대극장 브이아이피 티켓은 파격적인 가격이다. 요즘 1000석 이상 대극장 뮤지컬의 가장 비싼 브이아이피석은 10만~16만원 선에서 팔린다. 1000석 이하 중극장 뮤지컬은 6만~9만원, 200석 안팎 소극장 뮤지컬도 2만~3만원이다.
에이콤인터내셔널 쪽은 오는 12월 무대에 올리는 <완득이>도 장기 공연을 목표로 삼아 같은 가격을 매길 계획이다. 관행처럼 굳어진 소셜코머스를 통한 티켓 할인 판매나 초대권 판매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 대표는 “부풀려진 가격 때문에 뮤지컬이 관객과 멀어지고 있다”며 “몇몇 제작사가 힘을 합치면 국내 창작 뮤지컬의 경우 가격 인하가 충분히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작료(로열티)가 없는 창작 뮤지컬은 장기 공연을 할수록 제작비가 줄기 때문에 5만원 이하 티켓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뮤지컬 팬들은 반기고 있다. 다음달 16일부터 11월18일까지 39번 공연할 예정인 <영웅>은 지난 8월15일 티켓 판매를 시작해 한 달 동안 전체 6만333석 중에서 10%도 팔리지 않는(4598장) ‘부진’을 겪었다. 하루 평균 판매량도 120장에 불과했지만, ‘티켓 값 인하’를 발표한 14일 당일에만 1682장이 팔려나갔고, 21일 현재까지 하루 평균 판매량이 600여장에 이른다. ‘5만원 밑 가격’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에이콤 쪽도 “가격을 내린 이후 관객 반응이 고무적”이라고 말한다.
뮤지컬 업계에선 대체로 “취지는 공감하나 현실적으로 다른 뮤지컬에까지 확대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는다. 제작사 쇼노트 송한샘 이사는 “세트·의상 비용과 배우·스태프 인건비 등 고정적인 제작 비용은 깎을 여지가 적은데다, 지난 10년간 배우·스태프 인건비는 계속 상승했지만 티켓 값은 거의 정체돼 있었다”며 “<영웅>이 제작비를 줄일 여지가 있었던 건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영웅>은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고 한국뮤지컬협회가 주관한 창작뮤지컬 육성사업 대극장 뮤지컬 부문에 선정돼 5억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설앤컴퍼니의 설도윤 대표는 ‘5만원 티켓’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1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당시 최고가인 15만원(VIP석)에 판매됐는데 올해 <위키드>도 16만원에 판매된 점을 예로 들면서, “10년 동안의 물가상승 등을 고려하면 현 티켓 가격이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영웅> 표 값 인하를 곱잖게 보는 시선도 있다. 한 제작자는 “판매 부진을 타개하려고 중간에 갑자기 명분을 내세우며 표 값을 내려 시장을 혼란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뮤지컬평론가 지혜원씨는 “우리나라 뮤지컬 제작 상황은 소수의 배우들 몸값이 매우 높은데다 주인공 배역을 더블캐스팅, 트리플캐스팅까지 하면서 인건비가 두세 배로 들고 있고, 공연장이 적은 탓에 장기 공연하기가 어려워 표 값을 대폭 인하하기 힘든 구조”라며 이런 문제가 우선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뮤지컬협회 차원에서 시장 전체의 흐름과 관객 수급 상황 등을 고려해 체계적인 티켓 할인 방안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뮤지컬해븐 박용호 대표는 “(표 값 인하는) 누군가는 나서야 할, ‘고양이 목에 방울 걸기’ 같은 일이었다”며 <영웅> 제작사가 내린 결정의 의미를 높이 사면서도, “확산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좌석 가운데 절반가량은 팔리지 않고 버려진다”며 남는 좌석을 메우기 위해 제작사들이 소셜코머스 등에서 반값 이하로 표를 파는 기형적인 할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뮤지컬 업계 스스로 제작비와 마케팅 정책에 대한 내부 자정이 있어야 하며, 전반적인 공연계 체질 개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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