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날의 조동익(베이스·보컬·오른쪽)과 이병우(기타·보컬)
서정민의 음악다방
“이거 봐요. 감동적이지 않아요?”
지난 14일 열린 고찬용 단독공연 뒤풀이에서 가수 한동준씨가 소주잔을 털어넣으며 말했다. 그가 내민 스마트폰 화면에선 두 사내가 미소를 머금은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동익과 이병우, ‘어떤날’이 재회하는 순간이었다.
조동익(베이스·보컬·사진 오른쪽)과 이병우(기타·보컬·왼쪽)가 결성한 어떤날은 1980년대 중후반 두장의 음반을 남기고 해체한 전설적 듀오다. 포크·록·재즈·팝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감성 어법을 확립한 이들의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 명반을 꼽을 때면 늘 몇 손가락 안에 든다. 그러나 당시엔 대중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음반만 내놓고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유희열을 비롯한 수많은 후배 음악인들이 ‘어떤날 키드’를 자처했고 이들의 발자취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또렷해지고 있다.
어떤날 해체 이후 이병우는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조동익과 연락이 끊겼다. 조동익은 90년대 전설의 음악공동체 하나음악의 좌장이 됐다. 2000년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이병우는 기타 연주자이자 영화음악가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영화 <장화, 홍련> <왕의 남자> <괴물> 등의 주제곡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2000년대 초반 하나음악이 경제적 압박으로 문을 닫은 뒤 조동익은 제주도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악기 대신 낫과 호미를 잡았다.
이병우는 2010년 10월 단독공연에서 어떤날 시절 곡들을 20여년 만에 연주했다. 20여년 전 셔츠를 입고 20여년 전 전기기타를 메고 무대에 올랐다. 그는 유희열·이적 등 객원보컬과 어떤날 노래 다섯 곡을 선보인 뒤 “이 자리에 조동익 형이 없어 마음이 허전하다”며 “다음엔 꼭 형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21~22일 조동익이 오랜만에 서울을 찾았다. 가수 장필순이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음반에 실을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녹음하는 현장에 온 것이다. 조동익은 편곡과 프로듀싱을 맡았다. 서울로 올라와 음악 작업을 한 건 10년 만이다. 오랜 침묵을 깨고 음악인으로서 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녹음을 마치고 서울 온 김에 오랜 음악 동료인 정원영을 만나려고 약속을 잡았다. 정원영은 역시 친한 친구인 피아니스트 김광민에게 연락했고, 김광민은 이병우에게 그 자리에 함께 갈 것을 제안했다. 강남의 어느 식당에 들어선 이병우는 환하게 웃었다. 그를 바라보던 조동익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이병우는 “95년에 마지막으로 보고 못 봤으니 17년 만의 재회”라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장필순·함춘호·한동준·박용준·고찬용·이규호 등 하나음악 식구들과 이적·정재일 등 후배 음악인이 자리를 함께해 즐거움을 나눴다. 한동준은 “이런 역사적 순간은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며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그는 “옛날에는 다들 하나음악 작업실에 모여 떠들고 놀았는데, 정원영·김광민도 그 멤버들이었다”며 “15년 만에 모여 회포를 푸니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조동익은 다시 제주도로 내려갔다. 장필순 새 앨범 작업에 들어갈 거라고 했다. 이병우는 다음달 20일 하는 자신의 정기공연 준비에 들어갔다. 어쩌면 제대로 된 어떤날의 무대를 볼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
서정민 문화부 기자
사진 한동준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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