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스럽게 입고 유치하게 말춤을
‘뼛속까지 B급’ 미국 주류를 흔들다
‘뼛속까지 B급’ 미국 주류를 흔들다
미국 유학생활 중 잠시 짬을 내 귀국한 올여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그 짧은 한달 동안 무섭게 폭발해버렸다. 내 기억 속에 이보다 더한 기세로 세계를 뒤흔든 단 한 곡을 얼마나 더 찾을 수 있을까. 그 사이 도착한 전자우편에는 미국에서 알고 지낸 현지 학생들과 교수들이 저마다 ‘강남스타일’을 주제로 삼아 말을 건넨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글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지금껏 단 한 번도 심각한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한국 대중문화를 앞세워 이야기를 청하는 것이다. 그간의 외국생활을 통틀어봐도 실로 이상한 세월을 살고 있음을 느낀다. 낯설지만 조금은 짜릿하다.
지난 주말 다시 돌아온 미국에서 몸소 느낀 ‘강남스타일’의 위력이 바깥에서 본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에 다시 놀란다. 운전하며 라디오를 켜면 트렌디하고 폐쇄적인 선곡으로 유명한 <키스 에프엠>에서조차 예의 그 중독적인 후렴구가 흘러나온다. <아메리칸 톱 40>(빌보드 싱글 차트 40위 안에 든 음악을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는 라이언 시크레스트가 그의 쇼에 싸이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한국말 가요를 소개하는 일은 또한 얼마나 진풍경인가.
일상 영역으로 돌아오면 상황은 더욱 흥미롭다. 특히 다양한 인종의 젊은이들이 밀집한 대학가에서 그 인기는 꽤나 구체적이다. “미치도록 웃긴다”거나 “나도 (말춤을) 배우고 싶다”는 학생들의 즉각적인 반응에서부터 “코믹함의 이면에 다른 정치사회적 상징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니냐”는 교수들의 학구적인(?) 질문 세례까지….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이 열풍을 이국적인 맛을 갈망하는 힙스터(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패션과 비주류 문화를 좇는 부류)들이 새롭게 발견해낸 대안 메뉴에 비유한다. 도심 속 온갖 월드 퓨전 음식점들의 인기 메뉴처럼, 이들은 유튜브와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전해진 코믹한 춤사위와 개성에 새롭게 눈길을 보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미국 대중문화의 축을 이루는 두 핵심 코드, 곧 ‘코미디’와 ‘춤’을 싸이가 정확히 파고들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디스코와 클럽 문화의 본진으로서 미국은 늘 다양한 문화권의 새로운 춤과 동작에 관심을 보여왔다. “‘강남스타일’ 춤은 쉽고 재미있다. ‘마카레나’(1990년대 중반 세계적으로 유행한 스페인 듀오 ‘로스 델 리오’의 히트곡) 춤처럼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출 수 있다”는 의견에서 알 수 있듯이, 프로의 영역이던 애크러배틱한(곡예에 가까운) 춤의 대안으로 싸이의 그 단순명료한 안무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건 아닐까.
주눅 들지 않은 솔직함 속에 겸손한 입담을 선보이는 싸이의 유쾌한 성품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로 받아들여진다. 비·원더걸스·소녀시대 등 미국 시장을 노리고 작심하고 길러진 세련된 아이돌 스타들과 달리 소탈한 매너를 가진 아시아인 싸이에게 주류 미국인들은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대화를 나눠본 어느 음악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아시아인이 마이클 잭슨을 모방하려는 시도는 어색한데, 그래봐야 아류로밖에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강남스타일’은 그 자체로 독창적이며 억지스럽지 않다”는 그의 의견에서 그 광범위한 인기의 근거를 발견한다. 아시아적 감수성이 ‘마카레나’의 춤과 영화 <오스틴 파워>의 비(B)급 코미디 정서를 품은 결과라고나 할까? 뼛속까지 비급을 자처하는 싸이가 토크쇼에서 말한 “고급스럽게 입고 유치하게 춤추자”(Dress Classy, Dance Cheesy)는 매력적인 메시지에 미국은 본능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미국 사회 주류에서 떨어져 주변부에 머물러야 했던 ‘아시안 아메리칸’(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그들만의 문화적 상상력을 싸이의 음악과 춤으로 발산하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아시아계라는 동질감, 싸이의 유학 경력에서 친근감을 느끼는 이 아시안 아메리칸들은 ‘강남스타일’의 최대 지지자들이다. 보스턴에서 4년을 보내며 다져진 그의 영어와 자연스러운(동시에 이국적인) 매너가 아시아라는 포지션과 만나면서 새로운 롤모델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속 가능성을 떠나 이것은 하나의 방향성의 문제다. 비주류(비급)들은 늘 중심부를 칠 새로운 모델을 모색해왔고, 싸이는 이제 이들이 고른 다음 타자다.
어제 전자우편을 하나 받았다. 미국음악학회의 한국음악학 분과로부터다. ‘강남스타일’ 현상에 대해 의견을 내놓고 그걸 연보에 실어 발표하자는 제안이다.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오르는 역사를 썼다는 소식도 들린다. 자, 어디가 결말일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쇼는 끝나지 않았다.
시애틀/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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