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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삶은 죽음을 위한 연습
‘3막 무대’에 풀어놓다

등록 2012-10-02 20:08

연극 ‘아워 타운’
연극 ‘아워 타운’
리뷰 l 연극 ‘아워 타운’
무대 감독이 해설자처럼 극 이끌어
우리는 일상의 소중한 것들을 너무 쉽게 잊고 산다. 째깍거리는 시계도, 해바라기도, 맛있는 음식도, 커피도, 새 옷도, 따뜻한 목욕탕도, 잠자고 깨는 것도 너무나 평범해서 그 진가를 모른다. 여자주인공 에밀리는 죽음을 맞이해서야 그 진가를 몰랐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매순간마다요? 산다는 게 다들 장님이더군요.”

미국 극작가이자 소설가 손턴 와일더(1897~1975)의 희곡 <아워 타운>은 일상의 소중함을 일러주는 작품이다. 1938년 발표해 퓰리처상을 받은 이 연극을 명동예술극장이 올해 가을 시즌 첫 작품으로 지난달 18일부터 무대에 올렸다. 전세계에서 매일 무대에 오르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1960년대 <우리 읍내>로 소개된 뒤로 여러 차례 공연됐다.

연극은 1901년 미국 뉴햄프셔주 그로버스 코너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사는 주민들의 지극히 평범한 삶을 그렸다. 1막에서는 마을의 하루를, 2막은 조지와 에밀리의 성장과 결혼을, 3막은 죽은 자들의 풍경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한태숙 연출가는 이 희곡의 주제를 ‘삶이란 죽음을 위한 연습’이라고 보고, 작품을 한편의 ‘연극놀이’로 꾸며놓았다. 그리하여 1막은 배우들의 공연 연습, 2막은 다소 발전한 모습의 연습, 3막은 실제 장면으로 설정하는 ‘극중극’의 형식을 띤다.

막이 오르면 무대 뒤편의 하얀 대형 스크린을 배경으로 삼아 접이식 사다리,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의자들, 마을 숲을 상징하는 나뭇단으로 꾸며놓은 미니멀한 공간이 눈길을 잡아끈다. 배우들이 의자에 앉아 악기 연습을 하는 동안 사다리에 걸터앉은 무대감독(서이숙)이 연극의 시작을 알린다.

공연은 온전히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에 의존한다. 그러나 관객들은 무대감독의 간섭 때문에 깊이 연극에 빠질 겨를이 없다. 그는 마치 브레히트 서사극에 등장하는 ‘해설자’처럼 극을 이끌고 배우들을 지시하고 심지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관객에게 지금 ‘연극’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번 공연에서 두드러진 건 중견 여성 연출가 한태숙씨의 변신이다. 연극 <레이디 멕베스>, <이아고와 오셀로>, <오이디푸스> 등에서 인간의 어둡고 강렬한 내면을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무대로 보여주었던 그는 이 작품에서는 뜻밖에 따뜻하고 담백한 어법으로 일관하여 깊이를 얻어낸다. 서이숙(무대감독), 박용수(깁스 의사), 정운선(에밀리 웹) 등 배우들의 연기도 자연스럽다.

이태섭씨의 무대, 김창기씨의 조명, 강은구씨의 음악도 작품의 세련미를 돕는다. 10월14일까지. 1644-2003.

정상영 기자, 사진 명동예술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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