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극작가 유미리 희곡 ‘정물화’
성기웅 연출로 국내초연
사춘기 감성 오롯이 담겨
성기웅 연출로 국내초연
사춘기 감성 오롯이 담겨
학교 연못가의 커다란 사과나무 꽃잎이 하얗게 날리는 4월의 마지막날 여고생 나나코는 친구들에게 자작 소설 <달의 얼룩>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 제10장 ‘유서’를 낭독한다. 나나코는 친구들에게 주인공이 17살 남자아이라고 둘러대지만 나나코의 환상에 등장하는 ‘물속의 나나코’, 곧 그의 분신이다. 나나코는 ‘물속의 나나코’에게 “오늘 밤 다들 잠이 들면 사과나무 밑으로 와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날 밤 나나코는 큰 사과나무 아래 연못으로 들어간다. 손에 사과나무 꽃가지를 쥐고서.
재일동포 극작가 유미리씨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희곡 <정물화>(사진)가 지난 5일 서울 혜화동 선돌극장 무대에 올랐다. <정물화>는 <물고기의 축제>, <해바라기의 관>, <그린벤치>와 함께 그의 대표 희곡 4편에 드는 작품으로, 4편 중 유일하게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이다. 유미리씨가 갓 스물에 써서 직접 연출해 무대에 올렸던 희곡이기도 하다. 이야기 짜임새는 세련되지 못했지만 사춘기 특유의 생각과 감성을 오롯이 담고 있다.
원작을 번역하고 윤색 작업까지 맡은 성기웅 연출가는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는 구어체와 섬세한 연출로 유미리 작가의 풍부한 이미지와 감성을 살려냈다. 그는 <과학하는 마음> 3부작, <삼등병>, <소설가 구보씨의 1일> 등의 작품에서 연극의 문학성을 천착해온 연출가다. 무엇보다 미니멀한 무대, 깔끔한 영상과 조명으로 극의 세련미를 더했다.
연극 <정물화>는 보수적이고 엄격한 가톨릭계 여고를 다니는 다섯명의 문예부 학생들이 방과후에 동아리실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그렸다. 다섯 소녀는 사춘기 감상에 젖거나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고민하면서 울고 웃으며 소중한 추억을 나눈다.
이 연극에는 유 작가가 스무살 감성으로 써내려간, 사춘기 시절 한번쯤 겪었음직한 동성애나 죽음에 대한 관심,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심이 묻어 있다. 관객들에게는 숨가쁜 일상에 파묻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전수지(나나코 역), 서미영(가오리 역), 류혜린(후유미 역), 김희연(나쓰코 역), 박민지(치하루 역) 등 사춘기 여고생 역을 소화해낸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다섯 배우들의 어린 눈빛 연기가 돋보인다. 28일까지. 1544-1555. 글·사진 정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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