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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음악은 초국적-의식은 국민적…케이팝 ‘불편한 동거’ 청산해야

등록 2012-10-18 20:22

[기고] 강남스타일 신드롬으로 본 케이팝의 미래
강남스타일과 아이돌의 차이는
유행과 스타일의 보편성
싸이도 글로벌 팝 가수 되려면
한국 활동 접고 미국으로 옮겨야

케이팝을 국민문화로 호출하면
음악도 없고 시장도 없다
견고한 국적의 경계 지워질 때
많은 가수들 세계적 성공 가능

지난 7월15일 발표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불과 3개월 만에 만들어낸 경이적인 사건들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가장 놀랄 만한 일로 기억될 듯싶다. 영국 유케이(UK) 싱글 차트 1위,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4주 연속 2위, 세계 30개국 아이튠스 차트 1위, 유튜브 조회수 4억8000만건 돌파 등 수치상 기록들은 케이팝(K-pop)의 국제 지위를 수직 상승시켰다. 인기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강남스타일’은 올해의 유행가로 등극할 가장 유력한 후보임에는 틀림없다. 한국이 아닌 세계에서 말이다.

‘강남스타일’ 열풍에 대한 광적인 반응과 여기서 비롯된 갖가지 구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지면에서 충분히 다루었던 터라, 이제는 이른바 ‘싸이 효과’의 지속 가능성과 케이팝의 미래에 대해 냉정하게 논할 때가 되었다. 30년 같은 3개월 동안 도대체 싸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싸이 덕분에 케이팝은 이제 미국 팝 시장을 안방처럼 드나들 수 있게 된 걸까? 케이팝이 얼마나 세계화됐는지를 가늠하는 데서 싸이와 아이돌 그룹을 구분 짓는 결정적 차이는 뭘까? 케이팝의 문화경제는 여전히 전도유망한가? 이 이야기를 해보자.

마돈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세계적인 팝스타의 음반을 제작했던 미국 유명 작곡가 피터 레이펄슨은 한국의 어느 방송사와 한 인터뷰에서 “‘강남스타일’은 보편성이 있기 때문에 가사를 굳이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세련된 제작 기법을 싸이가 잘 파악했고, 유머와 코미디, 클래식한 춤이 잘 결합되어 선풍을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그가 말한 보편성과 호기심은 사실 다른 의미가 아니다. 노래와 춤이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좋아하려면, 그 안에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이 말을 내 식으로 번역하면 ‘강남스타일’의 성공 비결은 초국적인 음악 코드와 국지적인 시각 코드를 잘 버무린 데 있다. ‘강남스타일’은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랩 비트가 잘 접목된 최신 유행 클럽 음악을 추구한다. 단순한 리듬 패턴, 반복적인 랩, 그리고 격렬한 댄스 비트는 굳이 가사를 몰라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신나는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말춤’과 엽기적이면서 코믹한 한국적 상황 설정은 시각적인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느 외국인의 말마따나 노래와 춤에 강한 중독성과 감염성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비와 원더걸스, 그리고 수많은 아이돌 스타들이 세계적으로 케이팝 팬덤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미국과 유럽의 주류 팝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코드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와 원더걸스는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스스로 미국화하려 했지만, 결과는 어설픈 흉내내기에 그치고 말았다. 소녀시대를 위시한 아이돌 스타들은 특별하지만 보편적이지는 않고, 자기 콘텐츠가 없다. ‘강남스타일’과 아이돌 케이팝이 갈리는 지점이 바로 유행과 스타일의 보편성이다. 인위적으로 조련된 기술과 잘 짜여 있지만 (‘강남스타일’ 노랫말에 나오는) ‘울퉁불퉁한 사상’이 없는 춤, 잘 놀 것 같지만 일정한 격식을 벗어나면 탄력을 잃어버리는 감성이 아이돌 케이팝의 큰 결함이다. 아이돌 케이팝은 세계 팝 시장에서 짜임새 있는 군무와 스타일로 ‘센스’가 있을지는 몰라도 ‘센세이셔널’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싸이의 세계적 인기는 지속 가능한 걸까? 현재까지 싸이의 인기는 ‘강남스타일’의 인기이지 싸이 그 자체의 인기는 아니다. 유행가야 시간이 지나면 시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싸이의 음악적 재능과 영어 구사력, 독특한 퍼포먼스 능력은 분명 지속 가능한 인기의 밑천이 될 수 있다. 다만 싸이가 명실공히 글로벌한 팝 가수가 되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다. 그것은 한국 음악 활동을 접고 자신의 음악 본거지를 미국으로 옮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음악 활동 방식이 지금과는 정반대가 돼야 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싸이의 소속사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는 비록 한국 최고 매니지먼트사 중 하나지만, 싸이의 세계적 음악 활동을 독자적으로 지원해줄 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싸이가 활동 거점을 미국으로 옮기는 한에서 말이다. 재원도 충분치 않고 미국 팝음악 제작 시스템의 생리도 잘 모른다. 신기하게도 싸이의 성공의 거의 대부분은 기획사의 사전계획 없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비단 와이지만의 문제는 아니고 국내 케이팝 연예제작사가 안고 있는 공통된 한계다. 비가 전성기 시절 박진영의 보호막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의 매니지먼트 능력으로는 비의 국제적 활동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싸이가 됐든 소녀시대가 됐든 글로벌 팝스타로서 지속성을 가지려면 미국 전문 매니지먼트와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충실한 음반 제작과 장기공연 기획 중심의 미국식 매니지먼트 방식에 충실해야 한다. 글로벌 팝스타의 꿈이 있다면 싸이는 국내에서 올릴 수 있는 짭짤한 행사 수익과 거액의 광고료에 욕심부리지 말아야 한다. 민족적 자부심에 호소하는 애국주의 마케팅도 버려야 한다. 그건 ‘싸이스럽지’ 않다.

아이돌 중심의 인위적 매니지먼트 방식으로는 케이팝이 미국과 유럽의 팝 시장에서 산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케이팝의 일본 시장 점령을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케이팝 아이돌 그룹들이 일본 활동으로 만들어낸 매출액의 70%는 모두 일본 음악산업 시장으로 흡수된다. 세계 팝 시장에서 아이돌 시장의 산업적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미국과 유럽의 10대 팬들이 아이돌 위주의 케이팝에 열광한다고 케이팝이 산업적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대단한 착각이다. 아이돌 제작 방식의 매니지먼트가 지배하는 케이팝은 10대들의 ‘캔디 팝’ 시장에 중요한 지분을 가질 순 있겠지만, 싸이처럼 대박을 내기는 어렵다. 실제 글로벌 음악산업을 움직이는 자본은 20~30대 음악 소비자들의 트렌드에 집중돼 있다. 아이돌보다는 싸이, 에픽하이, 타이거제이케이(JK) 같은 분명한 자기 음악이 있는 솔로형 장르 음악 가수들이 오히려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

케이팝이 반드시 미국 시장에서 성공해야만 그 실체를 검증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문화적 사대주의 발상이다. 일본·중국을 포함해 아시아 권역의 열풍만으로도 케이팝은 그 영향력을 자랑할 만하다. 싸이의 성공이 아이돌 케이팝 성공의 실체를 모두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영국 브릿팝과 남미 라틴팝의 역사적 경험을 생각해보면, 케이팝의 초국적인 열풍은 미국 팝 시장의 중심을 관통하지 않고서는 그 정당성을 온전하게 주장할 수 없다. 활동의 근거지를 옮긴다는 것은 단지 지리적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케이팝의 국적성에 대한 확고한 자의식의 소멸을 의미하기도 한다. 음악은 초국적인데, 의식은 여전히 국민적인, 몸과 마음의 불편한 동거 상태가 먼저 청산돼야 한다. 케이팝을 여전히 국민문화의 한 형태로 호출하는 한, 음악도 없고 시장도 없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강남스타일’ 열풍은 이미 글로벌 팝 시장으로 진입한 케이팝의 확실한 전환점을 보여준다. ‘강남스타일’의 세계적 열풍은 우발적이었지만, 어찌 보면 케이팝의 국지적 돌연변이가 만든 어떤 숙명의 계기이기도 하다. 미국의 한 라디오 음악방송 디제이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찾으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을 때, 바로 ‘이것’은 분명 케이팝의 잠재적이고 특별한 에너지를 의미한다. 적어도 싸이만이라도 이 특별한 에너지를 특별하게 사용했으면 한다. 케이팝에서 견고한 국적의 경계가 지워질 때, 아마도 싸이 이후에도 많은 케이팝 가수들이 빌보드 차트를 누비는 날이 올 것이다.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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