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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예술인들 ‘누가 누가 더 당했나’

등록 2012-10-23 20:11

서정민의 음악다방
‘누가 누가 더 당했나’를 가리는 희한한 좌담회가 열렸다. 지난 17일 저녁 서울 홍대앞 문화공간 인디프레소에서 열린 ‘예술인소셜유니온’ 준비위원회 발족식(<한겨레> 10월18일치 24면 참조)에서다. 만성적 생활고와 문화예술계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음악·미술·영화·방송·만화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노동조합을 꾸리자고 뜻을 모으는 자리였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라는 야구 명언이 있죠. 이 바닥에선 (돈을) 받을 때까진 받은 게 아니라는 말이 있어요.” 인디밴드 ‘더 문’의 리더 정문식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홍대앞에서 음악만 해서는 먹고살기 어려워서 영화·뮤지컬·드라마 음악 일을 했거든요. 작업료 입금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갑자기 연락 끊고 사라지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음악감독이 스태프인 내가 만든 곡을 자기 이름으로 올리고는 ‘나도 너만한 때는 그랬어’라고 하죠. 그걸 거부하면 업계에서 매장돼요.”

이번에는 만화가 김재수씨가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30만원, 70만원, 150만원.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그려주고 돈을 떼인 게 세 차례예요. 아는 사람이 소개한데다 사회적 기업이라 해서 계약서도 안 썼거든요. 주변에선 다 제 잘못이라고 하더군요. 지금껏 그림만 그려왔는데, 이제는 계약서를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제가 방과 후 수업으로 만화·애니메이션을 가르치는데, 나도 이렇게 힘든데 아이들에게 어떻게 희망을 줄 수 있겠어요?”

극작가 박새봄씨가 말했다. “10여년 일해오면서 반드시 계약서를 썼지만, 소용없었어요. 공연 끝나면 돈 안 주고 폐업 신고하고 다시 회사를 만드는 식이죠. 공연 제작자들이 실패하면 스태프에게 돈 안 줘도 된다고 생각해요. 실패에 책임지지 않고 손실을 예술노동자들에게 돌리는 거죠.”

25년 동안 평범한 주부였다가 쉰 넘어 방송 보조출연자(엑스트라) 일을 시작했다는 문계순씨는 7년 전 전국보조출연자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첫날 <한국방송> 드라마 <서울 1945> 촬영장에 갔다가 잠 한숨 못 자고 72시간을 꼬박 일했어요. 그런데도 일당이 3만원이에요. 더 놀라운 건 반장들이 보조출연자들을 감옥 죄수 다루듯 한다는 거였어요. 욕설은 기본이죠. 이건 아니다 싶어 두 달 만에 노조를 만들고 용역회사·방송사와 싸워왔는데, 여전히 돈 떼이고 상처받는 일이 다반사예요.”

정문식씨는 “그래도 너희는 하고 싶은 거 하니까 좀 굶어도 괜찮아, 네가 선택한 길이잖아, 원래 예술가는 가난한 거 아니냐, 이런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며 “예술노동의 가치가 경시되는 풍토를 바꾸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발족식 마지막 순서로 민중가수 연영석씨가 나와 노래했다. “누구는 뺏고 누구는 잃는가. 험난한 삶은 꼭 그래야 하는가. 앞서서 산 자와 뒤처져 죽은 자, 그 모든 눈에는 숨가쁜 눈물이. 왜 이리 세상은 삭막해지는가.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 내 마음만큼 일하는 세상, 내 일한 만큼 갖는 세상.”

‘간절히’는 참 좋은 노래다. 우리를 위로하고 즐겁게 하는 음악·영화·그림 등은 누군가의 땀과 눈물의 결실이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노래를 들으며 예술가들도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는 세상이 왔으면 하고 나도 간절히 바랐다.

서정민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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