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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아쉽다, 천하제일 비색청자

등록 2012-10-23 20:14

‘천하제일 비색청자’전에 전시되고 있는 고려청자의 대표적 명품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청자조각동녀모양물병(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청자상감구름학무늬매병(간송미술관 소장), 청자음각연당초문정병(일본 이데미츠 미술관 소장), 청자투각칠보무늬향로(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도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천하제일 비색청자’전에 전시되고 있는 고려청자의 대표적 명품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청자조각동녀모양물병(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청자상감구름학무늬매병(간송미술관 소장), 청자음각연당초문정병(일본 이데미츠 미술관 소장), 청자투각칠보무늬향로(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도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350여점 특별전
일본 희귀청자·중박 소장품 등
문화재 31점 포함 최상급 명품전
전시구성·작품배치 뒤죽박죽
“막 분류 시작한 청자도서관 느낌”
몸과 빛깔은 그들의 입이었다. 질박한 햇무리굽 그릇이든, 하늘빛 비색의 참외형 병이든, 학이 구름 위에 뛰노는 매병이든, 고려청자들은 한결같이 몸뚱어리에 아롱진 무늬와 빛깔로 800~900여년 전 장인들과 그 시절 세상사를 털어놓는다.

고려청자는 할 말이 많은 문화유산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 땅의 공예유산일 뿐 아니라, 디자인과 문양에 얽힌 사연도 많다. 중국의 남북조, 당대 황해안 도자기 가마에서 처음 건너왔다는 초기 햇무리굽 청자의 형성과정과 중국인들도 찬탄한 비색의 비결, 조각품 같은 특유의 상형 스타일과 상감 기법을 창안한 세부 과정 등은 지금도 온전히 풀리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무지막지한 도굴로 수많은 걸작들이 국외 반출된 후일담을 간직한 유물 또한 고려청자다. 그래서 청자 전시의 열쇠는 다채로운 역사적 이야기들을 머금은 청자들의 말문을 어떻게 트이게 하느냐로 집약된다고들 한다.

지난 16일부터 국내외 완형 청자 350여점을 선보이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중박)의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전(12월16일까지·02-2077-9000)은 역대 최대의 고려청자 전시라는 애초 기대가 무색하다. 2005년 용산 이전 뒤 열린 기획전 가운데 전시 디자인, 관객 소통 등에서 최악의 실패작이란 말들이 들린다. 박물관 미술부 전문가들이 지금까지의 학술적 성과에 근거해 짠 전시라는 점에서 실망감이 깊다.

이번 특별전은 일본 각지 컬렉션의 희귀 청자와 중박이 소장한 국내외 지정문화재만 31점이나 모은 최상급 명품전이다. 그러나 막상 전시를 보면 메시지를 좀처럼 짐작할 수 없다. 명품들을 두루 모았지만, 전시 구성과 작품 배치가 뒤죽박죽되어 있다는 느낌을 감추기 힘들다.

전시는 고려인의 시대적 미감을 찾는다는 취지 아래 1부에서 초기~후기 청자의 양식 변천상을 보여주고 2부에서 여가·종교·식기 등의 쓰임새를, 3부에서는 표면의 태토를 파내어 다른 색감 무늬를 입히는 고려 특유의 상감기법을 살펴보며, 마지막 4부는 최고 명품들을 추려 보여주는 동선으로 짜였다. 문제는 비슷한 명품들이 세부 전시 영역마다 일관된 맥락 없이 중복되듯 나타난다는 점이다. 1, 3, 4부 곳곳에 출몰하는 상감청자 명품들이 그렇다. 3부 ‘상감’의 경우 상감기법이 빼어난 여러 항아리와 매병, 그릇들이 도열한 전시장 한가운데에 성수를 담는 청동제 정병과 상감기법을 쓰지 않은 정병 청자들이 느닷없이 상감병과 비교전시돼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상감된 참외모양병들과 비슷한 모양의 비상감병들도 비교전시해 놓았지만, 정작 대표작인 인종 장릉 출토 참외모양병은 2부의 부장품 영역에 전시해 놓았다. 기획자가 제대로 전시를 장악하지 못했다는 징표다.

1부는 친절하고 구체적인 설명이 아쉽다. 초기 고려청자 역사를 보여주는 유적인 중국풍 벽돌가마에서 토착 흙가마로의 구조 변천을 담은 그림과 유적 사진, 전라도 강진·부안의 왕실 가마터로 생산 거점이 이전하는 양상을 펼친 지도 등을 곁들이는 배려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4부 명품편에서는 일본 야마토문화관에서 빌려온 희귀유물인 용모양 정병, 간송미술관의 원숭이 모자 연적 등 걸작들이 즐비하지만, 집중감상을 위한 시각적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고, 유물들을 줄줄이 잇대어 나열하는 단순한 배치 탓에 유물들의 매력에 몰입하기 힘들다는 평이 나왔다. 고려청자의 시원으로 꼽히는 992년작 순화 4년명 청자호(이화여대 박물관 소장)와 고려청자에 큰 영향을 끼친 월요·여요 등 중국 현지 가마 출토 도자기들을 대여하지 못한 점도 눈에 밟혔다. 전시장에서 만난 한 도자사 연구자는 “이제 막 분류를 시작한 청자 도서관을 보는 느낌”이라고 촌평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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