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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줄 아는 놈’에 열광했을 뿐인데…

등록 2012-11-01 20:11수정 2012-11-02 12:37

싸이 '강남스타일'
싸이 '강남스타일'
미국에서 본 ‘강남스타일’ 열풍

빌보드 차트 입성 이후 인기 폭발적
한국선 ‘싸이의 국위선양’ 환호하나
미국은 ‘멋진놈’ 노래·춤 맘껏 즐겨
미국인들의 명절 격인 핼러윈데이(10월31일)를 며칠 남겨둔 금요일이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미국 시애틀의 어학원) 파티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배트맨, 해리 포터, 교황, 핫도그·피자·햄버거 등 패스트푸드 삼총사까지 온갖 코스튬(특수의상)이 난무했다. 누구는 할리우드 스타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했고, 누구는 만나는 이들마다 기념사진을 찍어댔다. 누구는 벌써부터 엉망으로 취해 있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시작은 디제이(DJ) 방에서 들려온 익숙한 베이스 음이었다. 하도 들어 이제는 첫 음만 들어도 어떤 곡인지 맞힐 수 있는 그 멜로디에, 여기저기 정신 팔려 있던 이들이 하나같이 환호성을 지르며 음악이 나오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콜롬비아,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벨기에, 독일, 대만, 일본…. 각자 떠나온 곳은 달랐지만 향하는 곳은 같았다. 그렇게 한방에 모인 이들은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똑같은 춤을 추며 똑같은 주문을 외웠다. “에~ 섹시 레이디~ 오 오 오 오 오빤 강남스타일!” 디제이는 파티 전날 이런 당부를 하기도 했다. “‘강남스타일’은 더 신청 안 해도 돼요. 적어도 80번은 이미 신청 들어와 있으니까.”

이런 현상이 비단 한국인이 많은 어학원이어서만은 아니다. 싸이의 빌보드 차트 입성 이후, 여기서 그 누구를 만나도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강남스타일’ 얘기부터 나누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그 많은 만남들에서 “너 정말 싸이가 자랑스럽겠구나” 같은 얘기를 들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국내에서 보는 시각과 국외에서 보는 ‘강남스타일’ 열풍이 갈리는 지점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싶다. 이역만리 이국땅에서 불철주야 ‘국위선양’을 하고 있는 ‘비(B)급 정서’ 싸이는 적어도 이곳엔, 없다. 다만 이곳엔,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그 어떤 노래보다 트렌디한 클럽 음악과 미국의 유명 방송 진행자 라이언 시크레스트와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고, 미국 유명 토크쇼에 등장해 “드레스 클래시, 댄스 치지”(클래식하게 옷 입고, 싸구려처럼 춤춘다)라는 멘트를 센스 있게 할 줄 아는 동방의 가수 하나가 있을 뿐이다.

내게 ‘강남스타일’이 정말 좋다는 얘기를 천진난만하게 건네는 이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그냥 멋지잖아!” 싸이의 미국 진출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강남스타일’ 열풍이 그동안 국내 여러 연예기획사들이 다져놓은 발판 덕분이라거나 앞으로 미국 안 케이팝 열풍의 선구자 구실을 할 것이라는 반응은 흔치 않다. 다만 싸이 자체에 대한 평은 후하다. 실제로 미국에서 케이팝에 정통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스쿠터 브라운’(싸이의 미국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유명 매니저)이란 이름으로 싸이의 미래를 정의하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이곳에서 ‘강남스타일’ 현상은 분명 실재한다는 점, 그리고 ‘강남스타일’이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누구도 상상 못했던 것처럼 싸이와 케이팝의 미래 역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 정도다. 가끔 드는 생각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이 재밌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좀더 즐기는 일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뭘 좀 아는 놈”이 만들어놓은 이 큰 판에서, 우선 그냥 좀 놀고 보자.

시애틀/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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