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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72살 홍신자, 존 케이지를 다시 추다

등록 2012-11-08 20:09수정 2012-11-09 17:51

무용가 홍신자(72)씨
무용가 홍신자(72)씨
7년만에 ‘네 개의 벽’ 재공연
존 케이지 탄생 100주년 기념
그의 음악 맞춰 다시 무대서 춤
“40대 춤출땐 두려움 컸는데
지금은 정리할 수 있는 답이 보여”
“아쉬웠어요.”

지난달 18일 ‘2012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초청 공연이 열린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하늘극장. 한국 현대무용의 ‘전설’로 불리는 무용가 홍신자(72·사진)씨는 무대 위에서 객석을 내려다보았다. 현대음악의 거장 존 케이지(1912~92)의 동명의 피아노 음악곡에 맞춰 안무한 그의 춤공연 <네 개의 벽>이 펼쳐진 곳이다. 채워진 자리보다 비워진 자리가 많았다. 밤 10시에 문을 닫는 공연장 사정 때문에 1시간15분짜리 공연의 앞부분을 잘라내고 1시간으로 줄였기에 마음 구석이 더 쓰라렸다. 하지만 좌절보다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 더 해 보자는 생각이 앞섰다.

“내 춤을 직접 본 관객들이 손 편지로, 블로그 글로 감동을 표현하는 걸 보면서 확신은 굳어졌어요. 관객을 다시 만나야겠다고 결정했죠.”

2일 <한겨레> 사옥을 찾은 홍씨에게선 춤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가 넘쳐났다. 홍씨는 오는 20일과 21일 <네 개의 벽>을 같은 장소에서 다시 무대에 올린다.

그는 미국에서 활동하며 세계적인 전위무용가로 발돋움하던 1985년 뉴욕에서 <네 개의 벽>을 처음 선보였다. 평단의 호평을 발판 삼아 샌디에이고 공연을 거쳐, 일본 도쿄에서도 공연했다. 1996년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도 올렸다. 존 케이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헌정 공연’인 이번 <네 개의 벽> 무대는 2005년 일본 교토 공연 이후 7년 만이다.

케이지가 1944년에 발표한 음악 <네 개의 벽>은, 홍씨의 말을 따르면 “갈등과 방황과 좌절의 음악”이다. 비탄에 잠겨 있다가 연민으로 승화하는 감정의 변화가 극적인 작품으로, 피아노의 흰 건반만으로 연주된다. ‘네 개의 벽’은 사방의 벽에 갇혀 있는 듯한 절망감을 뜻한다. 홍씨는 “케이지가 음악과 인생에 대해 방황하면서 네 개의 벽에 갇힌 듯한 우울을 겪던 때 작곡한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1980년대 미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홍씨는 뉴욕의 현대무용가 그룹으로부터 <네 개의 벽>을 무용으로 만드는 작업을 의뢰받으면서 케이지와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의 교류의 시작이다. 27살에 무용을 시작한 홍씨의 나이가 당시 40대, 케이지는 70대였다.

“<네 개의 벽> 음악을 처음 듣자마자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서, 이걸 춤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란 두려움까지 들었지요. 이제는 지금의 내가 본 <네 개의 벽>을 성숙한 자세로 풀어냅니다. 지금껏 공연할 때마다 늘 변화를 주었지만 확실한 답을 찾진 못했어요. 이제 나이가 칠십에 오니까, 해답이 보였다고나 할까요. 이번 <네 개의 벽> 공연은 20년, 30년 전의 내가 본 <네 개의 벽>과 다른, 지금의 내가 본 <네 개의 벽>이에요.”

그는 이번 공연에서 “옛날 것을 다 지우고 완전히 새롭게 시도했다”고 말했다. “음악을 대하는 내 자세가 달라졌어요. 케이지가 이 음악을 썼을 때 그의 심정이랄까, 모든 것을 지금의 제가 더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이 생겼거든요.”

그는 케이지를 “시대를 앞서간 전위예술가이면서도 인간적이고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첫 만남 때 “인자한 선승 같은” 인상을 풍겼던 70대의 케이지와 비슷한 나이에 도달한 지금, 홍씨 역시 어딘지 선승을 닮은 표정으로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항상 지금이 제일 중요해요. 나는 언제나 지금을 표현하고 싶어요.”

혁신적인 몸짓으로 시대를 앞서갔던, 지금이 중요하다는 이 춤꾼에게 70대에 추는 춤의 의미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그런 고정관념도 깼으면 좋겠어요. 춤은 20·30대 예쁜 몸으로 춰야 한다는 관념을 깨야 해요. 칠십에 출 수 있는 춤이 있고, 팔십에 출 수 있는 춤이 있어요. 젊을 적 추는 춤과 지금 추는 춤은 차이가 있지요. 70대가 주는 깊이와, 인생의 모든 과정을 겪은, 몸과 정신에서 나오는 춤을 보는 것은 차이가 있죠.”

그는 “춤은 진실과의 만남”이라고 말했다. “무대에선 내가 벗은 사람이 돼요. 가장 정직하고 순수하고 겸허해지는 거죠. 그 안에서 나의 진실과 만나는 거예요. 무대를 통해 ‘진정한 나’와 관객의 만남을 이루는 게 내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나의 길이에요.” (02)2280-4114.

글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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