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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현대인의 이기와 무관심
소름돋는 스릴러 창극으로

등록 2012-11-28 20:39수정 2012-11-28 23:08

국립창극단의 스릴러 창극 <장화홍련>
국립창극단의 스릴러 창극 <장화홍련>
리뷰 l 국립창극단 ‘장화홍련’
창극에 연극 기법 접목한 추리극
마당극처럼 열린 무대 눈에 띄어
국악기·서양악기 협연 극적 효과
새로운 창극 언어 개발은 숙제로
국립창극단의 스릴러 창극 <장화홍련>이 27일 저녁 서울 남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서 막을 올렸다.

고전소설을 오늘의 배경으로 재해석하고 기존 창극 형식에 연극적인 기법을 접목시킨 실험적인 공연답게 공연장 구조부터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관객을 위해 열어놓는 해오름극장 정면과 좌우 출입문은 닫혀 있었다. 평소 배우·스태프의 무대 출입구로 쓰는 객석의 좌우 통로를 따라 공연 공간에 들어서자 객석과 무대를 확연히 구분짓는 극장식 프로시니엄 무대 대신, 마치 마당극에서 봄 직한 열린 구조가 눈길을 끈다. 무대 위에 ‘ㄷ’자로 객석을 올리고, 원래의 객석이 있던 자리는 장화와 홍련이 수장된 어두운 호수로 처리한 공간 구성과 디자인이 이채로웠다.

공연은 우리가 아는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의 이야기를 현대인의 이기심과 무관심이 빚어내는 갈등구조로 바꾸어놓았다.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은 조선 효종 때 평안도 철산부사로 부임한 전동흘이 배 좌수와 두 딸 장화·홍련이 계모의 흉계로 죽은 사건을 처리했다는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지어진 작품이다. 그러나 창극 <장화홍련>은 결혼과 유학에 들떠서 다른 가족의 고통에 무관심한 배장화와 배홍련 자매, 두 의붓딸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나 가난과 경제적 박탈감 때문에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계모 허씨, 아무런 대책 없이 무기력하기만 한 아버지 배무룡 등 현대의 한 가족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으로 탈바꿈했다.

이처럼 동시대 한 가정의 비극을 ‘한국적 소리’가 어우러진 새로운 창극 형식으로 풀어놓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배경으로 했기에 더욱 실감나고 충격적인 내용과 스릴러 추리극을 차용한 잘 짜인 극 구조가 공연 내내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했다. 화가 뭉크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군상들의 공포스런 표정들, 흡사 괴테의 <파우스트>의 죽음의 그림자 같은 구실을 하는 전율스런 도창(해설가), 입센의 <인형의 집> 같은 낯선 공간, 브레히트 서사극의 소격 기법, 그리고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의 목욕·살인장면 같은 이미지들이 객석 한가운데에 놓인 무대 위에서 펼쳐졌다.

2001년 연극 <배장화 배홍련>으로 호평을 받았던 연극연출가 한태숙(62·극단 물리 대표)씨는 현대인의 이기심과 무관심, 인간의 어두운 본능을 한편의 생생한 드라마로 연출했다. 창극 배우들도 음악적인 창(唱)과 연극적인 대사를 적절하게 섞으면서 흥미로운 무대 언어를 만들어냈다. 계모 허씨 역의 김금미씨, 장화 역의 김미진씨, 아버지 배무룡 역의 왕기석씨의 연기도 돋보였다. 또한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조화된 반주 음악도 극적인 효과를 높였다.

그러나 창과 대사가 간혹 자연스럽게 버무려지지 못한 채 소리가 겉도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래서인지 간간이 구사되는 흥타령조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전통을 낯설게 하기, 전통의 파괴만이 능사는 아니다. 창극은 물론 연극이지만 역시 상황에 맞는 소리와 장단을 통해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드는 음악극이다. 판소리는 조선시대의 말투를 소리로 만든 것이지만 수많은 명창이 그 시대 상황이나 새로운 극적인 틀에 맞게 노랫말과 소리, 곧 ‘더늠’을 덧붙여서 창작 폭을 넓혀왔다. 그래서 당대 사람들이 공감하고 저절로 추임새가 나왔다. 현대의 상황과 말투에 어울리는 새로운 더늠을 만드는 것이 바로 창극 현대화의 과제라는 걸 거듭 일깨워준 공연이었다. 30일까지. (02)2280-4115~6.

김태균/국악평론가

사진 국립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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