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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오싹하다, 재난의 공포는 더하겠지만

등록 2012-11-29 20:06

<이트_인투>
<이트_인투>
재난 주제 ‘카타스트로폴로지’전
불안한 일상 내재화된 현대사회
재난이 감각을 어떻게 바꾸는지
음산한 영상에 충격적 모습 비춰
온통 새하얀 방, 어디선가 검댕이 날아와 커튼이며 벽에 검정 자국을 남기기 시작한다. 검댕이 점점 더 많이 날아들면서 방은 어느새 시커멓게 변해가는데, 방 안의 여자는 무신경하게 차를 마시고 기지개를 켜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저 여자는 자기 방이 오염되어 가는 것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하는 걸까?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는 ‘카타스트로폴로지’ 전시장에는 서늘하고도 음산한 묘한 기운이 감돈다. 회화와 조형, 영상이 어우러지며 뿜어내는 그 느낌은 무채색에 가깝다. 그것도 밝은 하양이 아니라 회색이나 검정조의 어둠이 주를 이룬다. 전시 제목 ‘카타스트로폴로지’가 의미심장한데, 실은 전시를 기획한 독립큐레이터 조선령씨가 ‘재난’ 또는 ‘파국’을 뜻하는 ‘카타스트로피’에 ‘학문’을 뜻하는 접미사를 붙여 만든 신조어다. 곧 ‘재난학’이라고 할 수 있다.

제목처럼 이 전시는 ‘재난’이란 주제 의식으로 작품들을 모았다. 조 큐레이터가 재난을 전시의 모티브로 삼은 것은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이 계기였다고 한다.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차원이 훨씬 더 큰 ‘재난’은 어느 개인의 죽음이나 고통을 넘어서 우리가 사는 세상 전체의 붕괴를 암시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 점에 주목한 것이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재난이란 결코 지진이나 전쟁만은 아니다. 전염병, 테러, 환경 오염처럼 현대인의 삶을 위협하는 재난들이 다양해진 세상이다.

<이리듐>
<이리듐>
전시는 재난이 야기하는 파괴의 모습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가오는 파국을 섬뜩하게 느끼게 하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조 큐레이터는 “물리적인 충격으로 다가오는 근본적인 변화를 감각의 차원에서 다뤄보고 싶었다. 재난이 어떻게 우리 감각을 바꾸어놓았는가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작품들은 그래서 눈이 아니라 피부로 느끼게 되는 영상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시각적이기보다는 촉각적이다. 검은색으로 오염되는 방을 그린 송진희씨의 영상 작품 <이트_인투>는 이 전시의 분위기와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루마니아 작가 미하이 그레쿠의 <이리듐>은 기괴하면서도 아름답다. 아름다운 여성의 눈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나오고, 연기는 다시 입으로 들어간다. 일본 작가 구로카와 료이치의 <그라운드>는 중동 지역을 찍은 영상을 담은 3개의 화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모니터 속 풍경은 어느 순간 일그러지고 뒤틀려 명멸하고, 빛과 어둠이 교차하며 감각을 단절하고 이어붙인다.

무수한 점을 찍어 인물을 그리는 화가 박자현씨의 인물화도 재난 주제에 맞춰 출품됐다. 극사실적인데도 공허한 표정과 시체처럼 생기가 없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그림 속 여성들은 폭력의 희생양 같기도 하고 감각을 잃어버린 피해자 같기도 하다. 재난이란 우리에게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불안으로 다가오며, 그런 불안이 일상에 내재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현대사회의 한 특징임을 표정으로 말해주는 듯하다. 12월26일까지. 무료. 월요일은 휴관. (02)760-4850.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도판 아르코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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