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연극계는 거듭된 경기침체와 열악한 제작여건, 관객기근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의미 있는 창작물로 세상과 소통을 꾀했다.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물이 잇따르고 새 창작품보다는 관객에게 친숙한 화제작들의 재공연 행진 속에서도 올바른 시대정신을 반영하려는 새로운 사회풍자극이 쏟아졌다.
사회풍자극들은 권력·정치·사회와 충돌하며 거침없이 발언했다. 특히 올해는 4·11 총선에 이어 12·19 대선이 치러진데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이 잇따라 터져나와 다양한 연극적 소재가 되었다.
연초부터 연극 <권력유감>(극본·연출 이우천)이 ‘발기불능에 걸린 보스’를 통해 이 사회의 불합리한 권력과 권력의 폭력으로 빚어지는 기형적 세태를 풍자해 눈길을 끌었다. 4월 총선을 앞두고는 도둑 홍길동·막동 형제가 우연히 기득권층의 비리가 적힌 수첩 하나를 입수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해피투게더>(김태린 작·연출)가 당시 ‘돈봉투 파문’으로 술렁이던 정치권에 일침을 날렸다.
해방 이후 좌우 이념 갈등과 군사독재, 유신 등 우리의 굴절된 현대사도 12·19 대선 이슈와 맞물려 작품화되었다. <대한민국 김철식>(최일남 원작·방은미 연출)은 양심적인 한 소시민이 부정부패가 판치는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들어 좌절을 겪는 모습을 통해 1970년대 우리 정치사를 풍자했다. 이달 13일 대학로 가변극장 키작은소나무 무대에 오른 창작집단 라스(LAS)의 연극 <성은이 망국하옵니다>(이기쁨 작·연출)도 이 나라 ‘좆선’의 왕 이영과 두 딸 건화 공주와 린화 옹주의 권력 대물림과 음모, 배신, 파국의 이야기를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주요 테마를 빌려 실감 나게 그려냈다. <꿀꺽꿀꺽 낄낄낄-유신의 소리>(김정헌 작, 윤한솔 연출)와 <전명출 평전>(백하룡 작, 박근형 연출), <햄릿6-삼양동 국화 옆에서>(기국서 연출)는 유신 독재의 끔찍한 기억과 전두환 정권의 삼청교육대, 이명박 정권의 용산참사, 성폭행 피해자의 모습을 담아내 많은 공감을 얻었다. 김은성 작가와 부새롬 연출가 콤비의 <뻘>과 <로풍찬 유랑극장>은 각각 5·18광주민주화운동과 여순반란사건의 아픔과 상흔을 질박한 사투리로 풀어내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1970년 칠레 군사정권을 배경으로 한 <과부들>(아리엘 도르프만 원작, 이성열 연출)도 70년대 유신 독재 시절의 폭정과 의문사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만연한 외모지상주의와 학교폭력도 풍자의 소재가 되었다. <못생긴 남자>(윤광진 연출)는 ‘세계적인 성형 공화국’ 한국의 사회상을 꼬집었다. 또 올해 히서연극상 ‘올해의 연극인상’을 수상한 김광보 연출가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하타사와 세이고 작)는 학교폭력과 이를 부추기는 가정, 학교, 사회의 이기적인 자화상을 성찰한 수작이다.
지난 11월에는 ‘한국 연극계의 산증인’인 원로배우 장민호씨가 88살을 일기로 타계해 많은 연극인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노배우들이 식지 않는 열정을 과시한 한해이기도 했다. <밤으로의 긴 여로>의 이호재(71)씨, <보물>의 전무송(71)씨, <3월의 눈>의 백성희(88)·박근형(72)씨, <봄날>의 오현경(76)씨, <아버지>의 이순재(77)씨, <19 그리고 80>의 박정자(70)씨가 잇따라 무대에 올라 관객과 만났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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