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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미친듯 노는 당신을 전시합니다

등록 2012-12-20 20:26

잭슨 홍 개인전 ‘13개의 공’
전시장을 운동장처럼 꾸며
공놀이로 촉각적 교감 시도
“무엇을 즐기든 관객의 자유
그속에서 의미 찾으면 만족”
얼마 전 잭슨 홍의 개인전이 시작되던 날 전시장을 찾아온 관객들이 “미친 듯이 뛰어놀다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뛰어놀았다’고? 미술 전시장에서? 궁금해져 찾아가 본 전시장에서 의문은 풀렸다.

서울 서초동 아트클럽1563에서 열리는 작가 잭슨 홍의 개인전에는 다양한 크기의 공들이 굴러다닌다. 그래서 전시 제목도 ‘13개의 공’이다. 전시장은 그 공들을 던지고 차고 때리고 굴리는 운동장이다. 바닥에는 경기장 선이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미니 축구도 가능하고 하키 게임도 가능해 보이는 키 작은 골대가 2개가 아니라 3개다. 벽에 붙인 농구 골대는 바스켓 두개가 나란히 있다. 공간 정중앙은 권투 연습용 펀치볼이 차지했다. 아주 작은 하키 퍽부터 말랑말랑한 연습용 야구공, 그리고 사람만한 큰 공까지 제멋대로 굴러다닌다. 그리고 그 사이에 뜬금없이 조형물 하나가 서 있다. 쇠로 만든 귀여운 돼지 네 마리가 줄지어 행진하는 모습(사진)이다.

자동차 디자이너로 출발해 미술 작가가 된 잭슨 홍(41)은 늘 기발한 상상력으로 재미와 의미가 공존하는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물건을 만드는 손맛을 배제해 공산품처럼 매끈하게 뽑아낸 물건들을 조합해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사물을 만드는 작업이 그의 특기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발명’에 가깝고, 그 발명은 사물과 의미의 ‘발견’을 조합한 것이기도 했다. 진기한 발명품이지만 양산될 수는 없는, 아이디어는 분명 흥미롭지만 그렇다고 쓰기에는 편하지 않은 진기한 물건을 뜻하는 ‘진도구’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아예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운동을 하게 만드는 프로그램 자체가 작품이 되는 작업으로 선보였다. “이전 작업이 ‘이런 걸 만들어 쓸 수 있다’ 또는 ‘이런 걸 상상해보라’고 제안하는 것이었는데, 작품과 관객 사이의 촉각적 교감이 없는 것이 아쉬웠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오브젝트 메이킹’(사물 만들기)을 줄이고 사람들이 놀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전시장에선 7개의 종목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의도는 말하지 않는다. 무엇을 즐기든 그 행위에서 의미라면 의미가 생겨날 테니까.

놀이터 같은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의 반응은 작가가 예상한 것 이상이었다고 한다. 펀치볼 고무줄에 갑자기 매달려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고, 미니 축구를 하다가 치열한 경쟁심에 빠져드는 남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더 열심히 즐겁게 적극적으로 ‘노는’ 이들은 여성 관객들이더라는 것도 흥미롭다. 잭슨 홍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혼자 공놀이를 하는 현시원 큐레이터의 모습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미술보다는 사회적 관계와 맥락을 중시하는 ‘관계미술’로 영역을 넓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봐도 됩니까?” 작가는 웃기만 한다. “관계미술도 재료로 쓴 것으로 봐주세요.” 그럼 저 돼지 조형물은 뭘까? “전시의 소실점 같은 것, 경기의 트로피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작품이 디자인인지 미술인지 또는 관계미술인지, 아니면 그 모두인지는 모르겠지만 금속돼지와 통통거리는 공소리가 어우러지는 전시장은 분명 색다른 경험을 준다. 그 속에 뛰어들어 당신만의 동작을 펼쳐 보이면 당신은 작가의 뜻대로 이끌린 것일 수도 있고, 동시에 작가의 의도를 뛰어넘는 존재이자 작품이 되는 것일 수도 있다. (02)584-5044, 내년 1월22일까지. 24~25일, 31일~1월1일 휴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잭슨 홍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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