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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혁명보다 붉은 두 홍위병 ‘불멸의 사랑’

등록 2012-12-23 20:11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리뷰 l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문화혁명의 붉은 광기 속에서도 사랑의 꽃은 아름답게 피어났다. 비록 그 꽃은 만개하지 못하고 일찍 시들었지만 화해와 용서의 열매를 남겼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원작을 중국 문화혁명기를 배경으로 하여 새로이 각색한 한·중 합작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사진)이 18일 저녁 서울 남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서 막을 올렸다. 한-중 수교 20년을 기념해 한국의 국립극단과 국립극장, 중국을 대표하는 국립극단인 중국국가화극원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중국의 인기 연출가 톈친신(44)이 기획과 연출을 맡아 한국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었다.

중국국가화극원 상임연출가 톈친신은 셰익스피어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거리와 인물들을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뜨거웠던 문화혁명 시대로 옮겨와 서로 대립하는 두 홍위병 집단 남녀의 사랑으로 바꿔놓았다. 그는 문화혁명 시대가 주는 극단적인 이미지와 인생에서 가장 불안하면서도 뜨겁게 빛나는 청춘의 이미지가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문화혁명은 1966~76년 마오쩌둥 사상을 추종하는 중국의 젊은 10대들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만민에 대한 전쟁’이었다. 로미오는 공장노동자의 아들로 가장 극단적인 ‘공련파’ 홍위병의 선봉장이고, 줄리엣은 이들과 대립하는, 군인 자녀들로 이루어진 보수적인 ‘전사파’의 홍위병이다. 두 남녀는 어느 날 전사파의 무용제에서 운명처럼 만나 파벌을 초월한 사랑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그 사랑은 끝내 이뤄질 수 없다.

연극은 중국 연출가와 중국의 정서, 한국 배우들의 이질적인 조합으로 간혹 이념과 정서의 간극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기발한 웃음과 눈물로 인간의 가장 숭고한 감정인 ‘불멸의 사랑’을 절절히 녹여낸다.

막이 열리면 60년대 후반 중국의 어느 도시의 거리 모습을 표현한 무대가 인상 깊게 다가온다. 중앙 무대는 급하게 경사진 슬레이트 지붕으로 꾸며졌고, 그 좌우에는 군인 세력(전사파)의 시멘트 건물과 노동자 세력(공련파)의 것으로 보이는 벽돌 건물을 대립해 배치했다. 그 건물 위를 굵은 전깃줄이 위험하게 드리워져 있다.

10대 홍위병들은 전깃줄을 도르래처럼 타거나 경사진 지붕 위를 위태롭게 뛰어다니며 싸움을 벌이고 사랑을 나눈다. 가파른 무대는 당시 10대들의 불안한 심리와 무모한 열정을 드러내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인 사랑을 암시한다.

연극은 배우들이 전봇대 전선을 타고 지붕 위와 동네를 넘나들며 펼치는 에너지 넘치는 연기에다, 격렬한 전투 장면과 감성적인 춤(안무 박경수), 코러스의 라이브 연주(작곡 김철환)까지 곁들여져 박진감이 넘친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회색 건물, 붉은 노을(무대 디자인 박동우, 조명 디자인 김창기), 노동자 세력의 푸른빛 의상과 군인 세력의 초록색 제복과 빨간 완장(의상 김지연) 등 강렬한 색감의 대비는 시각적 이미지에 대한 연출가의 남다른 감각을 엿보게 한다.

원작을 세공하여 친숙한 대사로 옮겨놓은 극본(각색 레이팅, 윤색 고연옥)도 극의 친밀도를 높인다. 로미오 역의 강필석씨, 줄리엣 역의 전미도씨도 호흡을 잘 맞추지만, 유모 역의 고수희씨, 뤄 선생 역의 김세동씨를 비롯해 장성익·서경화·김정환·박완규씨 등 중견배우들의 노련한 연기가 빛난다. 한국 공연은 29일까지이며, 내년엔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쿤밍 등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1688-5966.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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