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이정섭 6년만의 개인전 ‘요소’
벽에 걸어 문서 담아뒀던 고비
크기 키워 모던하게 깜짝 변신
고열 가공한 탄화목 재료로 써
“생각들을 갖춰놓은 가구란 뜻
말 자체가 예뻐 관심 갖게됐죠”
벽에 걸어 문서 담아뒀던 고비
크기 키워 모던하게 깜짝 변신
고열 가공한 탄화목 재료로 써
“생각들을 갖춰놓은 가구란 뜻
말 자체가 예뻐 관심 갖게됐죠”
본인은 탐탁잖게 생각하는 ‘서울대 미대를 나온 목수’라는 수식어로 유명한 이정섭(41·내촌목공소 대표)씨는 최고급 재료로 아주 비싼 가구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가구는 일체의 치장 없이 가구 본연의 형태를 추구한다. 가구 수명이 일회용품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평생 쓸 수 있는 제대로 된 가구를 만든다는 것이 그의 가구 철학이다. 그림보다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 좋아 무작정 목수가 된 그는 강원도 홍천 내촌에 들어가 나무를 파기 시작해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작품 가구를 만드는 현대 목수로 자리잡았다. 가구 디자이너나 업체 특유의 디자인으로 브랜드가 되는 시대, 브랜드적인 특성을 거부하고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가구의 기본꼴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정섭이 브랜드가 된 것은 역설적이어서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가 2006년 이후 6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옥션 강남점 전시장은 얼핏 보면 검은 비석 같은 수직 기념탑들이 솟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원목을 고열로 가공한 탄화목으로 만든 이번 작품들이 유독 가늘고 길게 솟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쓸모를 좀처럼 짐작하기 어려운 가구가 있다. 앞에서 보면 검은 나무판뿐, 그런데 옆을 보면 물건을 넣는 수납 공간이 9단으로 잘게 분할되어 있다. 마치 하모니카를 옆으로 세워놓은 듯한 묘한 형태로, 이 목수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새 가구다.
‘고비’라는 이름을 보면 의문은 풀린다. 고비는 벽에 걸어놓고 편지나 문서를 보관하는 전통 가구다. 얇은 나무판을 주먹 하나 정도 간격을 두어 앞뒤로 대고, 그 사이를 두세 칸 정도로 구분해 종이 두루마리를 끼운다. 조선의 서재 용품 가운데 하나로, 벽에 수직으로 건 고비에 두루마리 종이를 수평으로 줄지어 끼운 모습은 조선 선비의 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보통 오동나무로 만들어 앞판에는 무늬를 새겨넣어 치장했고 여성용 고비는 색깔을 입히거나 색종이를 붙여 좀더 화려하게 꾸미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가구가 바로 고비다.
이 목수는 좌식 한옥에 어울리던 작고 귀여운 고비를 현대 입식 공간에 맞게 훨씬 키우고 형태를 모던하게 다듬어 재탄생시켰다. 이 현대판 고비는 두루마리 문서가 사라져 종이를 꽂을 필요는 없어졌지만 대신 다른 물건을 넣을 수 있는 키 큰 장이 된 것이다. 가로로 벽에 붙이면 수납공간이 보이지 않는 숨김장이 되고, 세로로 세우면 마치 가늘고 긴 거대한 시디(CD)장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우리나라 가구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름이 고비일 겁니다. 고비라는 말 자체가 예뻐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우연히 고비의 한자 표기를 봤는데 ‘생각할 고(考)’에 ‘갖출 비(備)’로 쓰더라고요. 생각들을 갖춰놓는 가구, 뜻도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크기를 키워도 제대로 된 가구가 되겠다 싶었어요.”
이번 전시에는 고비 말고도 조선 목가구의 으뜸이랄 수 있는 사방탁자를 재해석한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전통 사방탁자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키를 훌쩍 키우기도 하고 문짝을 달기도 해 변화를 줬다. 사방탁자란 것이 “워낙 짜임새가 있어 손을 댈 데가 없는 가구”여서 최소한의 시도만을 보탰다는 설명이다.
경첩 등 가구에 쓰는 철물들의 품질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들을 찾기 어렵다며 그동안 문짝이 없는 가구만 만들어온 그가 반닫이 등 문짝 달린 가구들을 내놓은 점도 변화라면 변화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실험도 있다. 문짝은 있는데 손잡이가 없는 장도 있다. 장 위에 올려놓은 작은 나무 조각이 손잡이다. 자석이 달려 문짝에 대면 문이 열린다.
정말 오랜만의 전시인데도 그는 아쉬워했다. 이번 전시의 이름은 ‘요소’. 원래는 ‘해석’으로 하려 했지만 아직 해석이 덜 된 상태여서 한참 멀었다는 것이다. 고집스런 그의 표정을 보면 다음 전시는 제법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내년 1월7일까지. (02)391-0013.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서울옥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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