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용수(57)씨
연극 ‘사라지다’ 주연 박용수씨
연기 인생 35년만의 ‘파격 변신’
금기 어긴 사람들의 아픈 이야기
“존재 자체로 인정받는 사회 돼야”
연기 인생 35년만의 ‘파격 변신’
금기 어긴 사람들의 아픈 이야기
“존재 자체로 인정받는 사회 돼야”
막이 오르자 짙은 화장을 한 중년 여성이 노란 수선화 한 다발을 안고 무대로 걸어나왔다.
“불까지 꺼 놓고. 귀신 나오겠다 이년들아.” 느끼한 콧소리와 몸짓에 애교가 철철 넘친다.
조명이 밝아지면서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중견배우 박용수(57·사진)씨였다.
“조금은 주저했어요. 제가 외모 자체는 완전한 남성 아닙니까? 얼굴도 크고 몸도 크고. 그렇지만 여성적인 표현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없었어요. 제 속에 여성적인 부드러움이랄지 세밀함이랄지 어리광이랄지 의존감이랄지 이런 것이 조금 있어요.”
지난 29일부터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무대에 오른 연극 <사라지다>가 중견배우 박용수씨의 파격 변신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가 35년 연기 인생 최초로 트랜스젠더(성전환자)에 도전했다.
그는 “제 속에 있는 여성적인 것을 끄집어내려고 했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고도를 기다리며>, <한씨연대기> 등을 비롯해 영화 <화려한 휴가>, <한반도>, <공공의 적2> 등과 티비드라마 <강력반>, <아테나>, <대왕 세종>, <토지> 등에서 중후하고 남성적인 매력을 뽐내온 배우로는 실로 파격이다.
“제가 진지하고 경직된 배우에서 릴렉스된 말랑말랑한 배우로 변하게 된 경계선이 딱 40살쯤 됩니다. 연기 훈련을 받으면서 ‘호흡이란 게 원활해야 연기가 부드럽게 되는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연기가 유연해지니까 예전에 저도 몰랐던 제 속에 있던 온갖 장난기, 어리광, 칭얼거림, 질투 같은 부정적이고 귀여운 것들이 제한테 많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저하고 오래 지내고 본 사람들은 다 압니다. 어리광쟁이고 애기 같기도 하고 또 박용수 속에 여자 있다고 해요.”(웃음)
대학로가 주목하는 젊은 작가이자 연출가 이해성(44·극단 고래 대표)씨의 신작 <사라지다>는 경계와 금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은 트랜스젠더 ‘말복’, 여성이면서 여성을 사랑하는 ‘신정’, 결혼과 이혼의 경계에 서있는 ‘상강’, 유부남과 불륜에 빠진 ‘동지’, 행복과 우울의 경계에 서있는 ‘청명’ 등 우리 사회가 만든 경계에 서있는 여자 5명의 질펀한 수다를 통해 금기를 어긴 자들의 아픔을 드러낸다.
박용수씨는 “타인의 아픔에 대한 진솔한 시선이 담겨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사는 게 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일상사에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실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만드는, 욕망과 배설, 삶과 죽음, 정상과 비정상 등의 경계들의 싸움, 경계의 넘나듦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는 이 작품에서 자신 속의 여성성을 찾기 위해 아내와 어린 딸을 버리고 트랜스젠더로 변신한 말복 역을 맡았다. 그는 “말복은 우리 사회의 ‘경계 짓기’로 엄청난 상처를 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경계 짓기의 가짓수나 농도가 줄어드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아닌가 싶어요. 우리는 살면서 참 경계를 많이 짓죠. 극중에 말복이 말하잖아요. ‘내가 여자라는 걸 유일하게 인정해준 사람이 언니였어’라고. 물론 처음에는 누나였겠지만. 우리는 그냥 있는 자체를 인정해주는 사회가 아니죠. 그러니까 그 경계에 있는 이들은 엄청난 상처를 안고 살고 있습니다.”
남산예술센터과 극단 고래가 공동제작한 연극 <사라지다>에는 박용수씨와 중견 여배우 강애심씨(말복의 전 부인 역) 외에 50대 1의 오디션 경쟁을 뚫고 합격한 다섯 명의 대학로 여배우 황세원(동지 역), 박윤정(신정), 우수정(청명), 김원정(상강), 황은후(윤주)씨 등이 출연한다. 20일까지. (02)758-2150.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남산예술센터 제공
연극 ‘사라지다’ 주연 박용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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