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학과 연극을 접목한 낭독공연이 부쩍 늘고 있다. 낭독공연은 관객들이 글로 되어 있는 문학 작품을 눈과 귀로 느끼고 상상하면서 감동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다. 사진은 <해산바가지>의 낭독공연 장면. 선돌극장 제공
눈·귀로 느끼고 상상하는 매력
박완서 소설 등 낭독공연 인기
판소리처럼 추임새에 장구치고
음향과 영상 무대기법 가미해
박완서 소설 등 낭독공연 인기
판소리처럼 추임새에 장구치고
음향과 영상 무대기법 가미해
7일 오전 11시30분 서울 혜화동 선돌극장. 객석에 주로 40~50대 중년 여성들이 차와 커피를 마시며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무대 오른편에는 스탠드 불빛 아래 작은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전기난로 위에 찻주전자가 실 같은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다. 무대 왼편에는 악사 김미동씨가 다소곳이 앉아 장구와 해금을 만지고 있다. 이윽고 여배우 최정화씨가 무대 위로 올라와 조심스럽게 차를 따라 한 모금 마신 뒤 관객들에게 인사를 한다. 그러고는 의자에 앉아 박완서의 소설 <해산바가지>를 읽어내려 간다. 딸 넷과 아들 하나를 둔 주인공 ‘나’가 말년에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겪은 갈등을 담담하게 털어놓는 1인칭 소설이다
배우가 낭독을 시작하면 악사가 녹음된 피아노 반주에 맞춰 조용히 해금을 연주한다. 배우가 탁자 옆 캔버스에 그려진 전화기 그림을 펼치고는 주인공 ‘나’가 외며느리가 둘째 딸을 낳아 속상해하는 ‘친구’와 전화통화하는 장면을 연기한다. 배우가 ‘나’와 ‘친구’ 1인 2역의 목소리와 표정으로 수다를 떨자 악사가 판소리 공연처럼 빠른 장단으로 장구를 치고 “저런”, “쯧쯧” 하고 추임새를 넣는다. 객석에서 폭소가 터진다.
극단 이루가 7일 막 올린 낭독공연 ‘배우가 읽어주는 소설 Ⅳ-2013 박완서와 함께 세월을 거슬러’의 공연 모습이다. 소설가 박완서 2주기를 맞아 그의 단편소설 세 편을 무대에 올린다. 다음달 2일까지 매일 오전 11시30분에 공연되며, 월·화·금요일에는 <해산바가지>를, 수·목·토요일에는 <촛불 밝힌 식탁>과 <대범한 밥상>을 공연한다. 낭독공연 ‘배우가 읽어주는 소설’ 시리즈는 선돌극장이 2009년 첫선을 보여 ‘입체 낭독공연’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장기간 흥행하고 있다.
공연을 본 주부 김시원(31·경기도 광주)씨는 “낭독공연은 처음 봤는데, 생각보다 몰입도 잘되고 마치 내가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머릿속에 상상했던 일들이 무대 위에서 잘 표현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완서씨의 맏딸 호원숙씨도 “낭독공연이라 밋밋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어머니의 문학 혼을 불러일으킨 듯 연출이 뛰어났다. 해금 연주와 각 장면을 상징하는 재미있는 그림 등이 어우러져 소설을 읽어준다기보다는 진짜로 연극을 공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낭독공연은 관객들이 글로 되어 있는 문학 작품을 눈과 귀로 느끼고 상상하면서 감동을 맛볼 수 있다는 데 가장 큰 매력이 있다. 문학과 연극을 접목한 낭독공연이 관객의 인기를 끌면서 장기간 공연하는 작품도 생겨나고 있다. 본디 낭독공연은 희곡을 바탕으로 하여 배우들이 목소리로만 연기하는 형식의 공연을 뜻했으나, 최근에는 전문적인 연출이 접목되어 문학과 연극의 중간형태라고 할 수 있는 연극적인 낭독공연으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주로 극단 워크숍 공연에서 선보였던 낭독공연이 최근에는 희곡 외에 소설로 소재가 확대되고 영상작업과 결합시킨 작품도 나오고 있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대구·경기·제주 등 지방 공연장과 극단들로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엔 명동예술극장과 남산예술센터, 서울연극제 등에서 창작 희곡이나 최신 번역 희곡을 낭독공연으로 올린 뒤 평가가 좋아 정식 연극으로 공연하기도 했다. 연출가 김광보씨가 지난해 1월 명동예술극장의 ‘현대 일본 희곡 낭독공연’으로 첫선을 보였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평단의 반응이 좋아서 지난해 7월 세종엠씨어터에서 정식 공연으로 올려져 대한민국 연극대상 연출상을 받았다.
서울 홍대앞 소극장 산울림도 4일부터 낭독공연 ‘산울림고전극장-소설, 연극으로 읽다’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 극단 여행자의 이대웅씨, 극단 작은신화의 정승현씨, 극단 청년단의 민새롬씨, 양손프로젝트의 박지혜씨 등 연극계의 촉망받는 연출가 4명과 배우들이 뭉쳤다. 4~13일엔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세 편(<검은 고양이>·<모렐라>·<심술궂은 어린 악마>)을 공연하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16~25일),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29일~2월7일),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2월14~24일), 현진건의 <새빨간 얼굴>(2월28일~3월10일)을 차례로 무대에 올린다. 단순한 낭독에서 벗어나 음향과 영상 등 무대 기법을 접목시켰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세 편을 읽는 공연을 연출한 이대웅 연출가는 “드러나지 않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읽지 않고 책장에 꽂혀 있는 포의 단편선 중에 이런 훌륭한 작품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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