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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피아노로 그린 ‘추상화가’ 바흐

등록 2013-01-14 20:23

피아니스트 지용(22)
피아니스트 지용(22)
리뷰 l 지용 독주회
바흐 분석하던 기존 해석 탈피
직관적이며 자유분방하게 접근
강렬한 명암 대비로 개성 넘쳐
피아니스트 지용(22·사진)이 12일 경기도 고양시 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전시회’라는 제목으로 독주회를 열었다. 이 ‘전시회’의 전시작품은 연주자 자신, 작품의 재료는 ‘바흐’였다. 청각적으로 들려주는 ‘연주회’에 ‘전시회’라는 제목을 붙인 역설적인 아이디어는 공연이 시작되고 중반을 넘어선 뒤에야 비로소 깊이 이해가 됐다.

연주를 시작할 때, 무대에는 덩그러니 피아노 한 대만 놓여 있었다. 바흐의 <샤콘>을 춤으로 표현한 영상을 사전 공개했던 그였지만, 막상 ‘전시회’에서는 음악 외에 다른 어떠한 연출 도구도 쓰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짧게 정돈하고 검은색 연주복을 입었다. 오직 음악의 근본인 바흐에 도달하는 데에 집중하려는 듯 보였다.

지용은 1부에서 바흐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은 작곡가 베토벤과 브람스의 곡을 먼저 연주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1악장에서는 안정된 기교와 곡을 장악하는 힘이 돋보였다. 2악장에서는 선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단단함과 유연함을 함께 보여줬다. 3악장에서는 곡이 지닌 오케스트라적인 특성을 유감없이 살려냈다. 그는 특히 빠른 패시지(선율이 급하게 상행 또는 하행하는 부분)에서 눈부신 음향을 쏟아냈다.

브람스의 <6개의 피아노 소품 중 1, 2번>에서는 곡에 내재된 드라마를 밖으로 이끌어내는 솜씨가 탁월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루바토(연주자가 나름대로 해석해 템포를 바꾸어 연주하는 것)와 댐퍼 페달(소리가 울리도록 하는 페달) 사용이 과해 음향이 다소 뭉개지기도 했다. 그는 1부 마지막 곡인 슈만의 모음곡 <어린이 정경>을 통해 순수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며 바흐에 이르는 다리를 놓았다.

2부는 ‘전시회’의 하이라이트, 바흐였다. 지용의 바흐는 매우 직관적이며 자유분방했다. 많은 바흐 연주자들이 당대의 음악사조와 작곡양식 등 원전에 대한 이해를 바탕 삼아 ‘분석적’·‘철학적’인 연주에 천착하는 데 반해 지용은 기존의 경향이나 대가의 해석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직관에 충실한 듯했다.

지용은 음과 음 사이를 끊으며 쳄발로(피아노의 전신)적인 타건으로 빠르게 연주했는데, <파르티타 1번>의 도입은 바로크적이었지만 뒤로 진행할수록 고전, 낭만을 거쳐 현대에 다다르는 느낌이었다.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와 페루초 부소니가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중 샤콘>의 해석은 가히 파격적이었다. 그는 셈여림과 빠르기, 악상의 자의적인 표현을 통해 음악에 내재된 명암을 강렬하게 대비시켰다.

그가 기존 해석의 틀을 벗어나 자신의 자유로운 영혼을 덧입힐수록 연주는 놀랍게도 흑과 백, 밝음과 어둠의 대비를 표현한 추상화나 현대무용처럼 시각적으로 다가왔다.

이날 지용은 다른 피아니스트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개성 넘치는 바흐를 보여줬다. 청중의 호불호는 엇갈릴 수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마도 청중이 지금까지 만난 어떤 바흐보다도 현대적인 바흐였을 것이다. 지용의 ‘전시회’는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도 열린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사진 크레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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