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락 오브 에이지>
서정민의 음악다방
지난 주말 서울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공연중인 뮤지컬 <락 오브 에이지>(사진)를 봤다. 지난해 개봉한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락 오브 에이지>를 보려고 벼르다 끝내 놓쳐 아쉬워하던 차에, 뮤지컬 소식을 듣고 반가움이 앞섰다. 사실 <락 오브 에이지>는 영화보다 뮤지컬이 먼저다. 영화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인기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다.
배경은 1980년대 중후반. 10대의 내가 헤비메탈 음악에 빠져든 시기와 일치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선셋 스트립에 자리잡은 록 클럽 ‘더 버번’. 극중 당대 최고 록스타 ‘스테이시 잭스’를 배출한 ‘록의 메카’와도 같은 곳이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 시장과 결탁한 부동산 업자는 이 일대를 밀어버리고 초고층 상업지구를 건설하려 한다. 이곳을 쓸어버리려는 자들과 지키려는 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야기의 토대를 이룬다.
줄거리는 익히 예상한 대로 흘렀으나, 적어도 나는 공연 내내 즐거움을 잃지 않았다. 1980~90년대에 즐겨 들었던 록의 명곡들이 줄줄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록의 메카를 쓸어버리려는 자들의 주제곡인 스타십의 ‘위 빌트 디스 시티’와 지키려는 자들의 주제곡인 트위스티드 시스터의 ‘위어 낫 고나 테이크 잇’이 맞서는 대목에선 극중 심각한 상황과 무관하게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교실에서 이어폰을 꽂고 무수히 따라 불렀던 익스트림의 ‘모어 댄 워즈’, 미스터 빅의 ‘투 비 위드 유’, 댐 양키스의 ‘하이 이너프’가 나올 땐 나도 모르게 입술이 실룩거렸다. 콰이어트 라이엇의 ‘컴 온 필 더 노이즈’, 유럽의 ‘더 파이널 카운트다운’, 화이트스네이크의 ‘히어 아이 고 어게인’, 포이즌의 ‘에브리 로즈 해즈 이츠 손’도 죽마고우처럼 반가웠다.
이야기가 마무리된 뒤 출연 배우들이 나와 인사하고 노래하는 커튼콜 때는 모든 관객이 벌떡 일어나 마치 록 콘서트장처럼 뛰어놀았다. 21세기 들어 급격히 저문 ‘록의 시대’가 다시 한 번 강림하는 순간이었다.
국내 음악 시장에서 록은 이제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가 된 듯하다. 주류 방송무대에선 1980년대부터 활약한 몇몇 고참 밴드와 최근 급격히 떠오른 아이돌형 밴드만이 근근이 모습을 비출 뿐이다. 두 부류의 간극을 이어주는 허리 구실을 하는 밴드들은 텔레비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록은 이렇게 추억과 향수의 대상으로 박제되고 만 걸까?
그렇지 않다. 지금 당장 서울 홍대앞으로 가보라. 방송과 언론에는 좀처럼 소개되지 않는 싱싱한 록 밴드들이 오늘도 클럽 무대를 불사르고 있다. 1980년대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엘에이(LA)메탈 음악의 산실인 선셋 스트립이 오늘날 홍대앞에서 부활했다 하면 과장일진 몰라도 허언은 아니다.
극에서 록 음악과 그 안에 담긴 자유로운 영혼을 사랑하는 시민들은 끝내 선셋 스트립을 지켜냈다. 지금 홍대앞 라이브 클럽들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 문을 여는 술집과 카페, 옷가게들 사이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 이곳마저 잃은 뒤 추억하고 싶진 않다. 이번 토요일 홍대앞에 가야겠다. 마침 티켓 하나로 여러 클럽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서울라이브뮤직페스타’가 열리는 날이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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