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역사에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두 명의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1813~1901)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가 나란히 탄생 200돌을 맞았다. 세계 곳곳에서 이들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하며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바쁘다. 국내에서도 올 한 해 동안 이 두 작곡가의 작품이 풍성하게 연주된다. 특히 이탈리아 오페라에 치우쳐 있던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바그너의 음악을 많이 접할 기회이다. 같은 해에 태어나 묘하게 대비되는 두 작곡가의 삶과 음악, 감춰진 매력에 대해 알아둔다면, 연주회에서 더 큰 감흥을 얻을 것이다.
■ 1813년, 불우한 유년, 늦은 작곡 공부 베르디는 1813년 10월10일. 알프스 산맥 이남, 파르마산치즈로 유명한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부적인 음악 재능을 타고났지만, 돈이 없어 어린 시절 전문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다. 독지가의 후원으로 뒤늦게 밀라노 음악원에 진학하려 했으나 입학 제한 연령을 넘긴데다 외국인(당시 파르마는 프랑스령, 밀라노는 오스트리아령)이라 결국 입학을 거부당했다. 그는 이후 2년 동안 밀라노의 라스칼라 극장 쳄발로 주자에게 개인지도를 받으며 작곡가로서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바그너는 1813년 5월22일 알프스 산맥 이북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반 년도 안 돼 아버지가 사망했고, 그 뒤 1년도 안 돼 어머니가 궁정 배우와 재혼했다. 바그너의 생부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소문이 파다했다. 바그너는 라이프치히대학에 입학한 뒤 인근 교회 합창 지휘자에게서 작곡을 처음 배웠다. 그가 음악을 익히는 속도는 스승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고 한다.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 베르디
선율 강하면서도 대중적인 음악
인간의 내면 울리는 오페라 작곡
성악적 기교와 화려함 돋보여
독일 출신 작곡가 바그너사실주의보다 신화세계에 관심
시·음악·무용 아우른 악극 창조
최장 16시간 연주 인내심 요구돼
■ 악(樂)과 극(劇) 베르디와 바그너는 똑같이 ‘음악적으로 양식화된 극’을 지향했지만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확립했다.
베르디에게 작곡은 가난에서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였다. 성공하려면 당대 최고 인기 장르인 오페라를 작곡해야 했다. 고군분투 끝에 오페라 <나부코>로 스타 작곡가가 된 뒤에도 그는 돈과 성공에 집착했다. 베르디 작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청중을 쥐락펴락하는 선율성 강한 음악, 그리고 남성적인 힘이 넘치는 드라마이다. 특히 그가 쓴 아리아(독창곡)들은 성악적 기교와 화려함의 정점을 보여줬으며 흥행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바그너는 모든 작품의 대본을 직접 쓸 만큼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그는 역사적인 소재나 현대 사회를 반영한 사실주의 오페라가 인간의 본질을 다루기에 부족하다고 보고, 신화의 세계에 관심을 쏟았다. 또한 자신의 작품을 기존의 오페라와 구분해, 극시(劇詩)·음악·무용의 총체예술인 악극(무지크드라마)이라 칭했다.
그가 사용한 혁명적인 작곡 기법 중 하나는 ‘라이트모티프’(Leitmotiv)로, 인물이나 사건에 특정한 선율이나 화성의 동기를 부여해 음악이 극을 이끌어가도록 했다. 그리고 ‘레치타티보’(오페라에서 말하듯 대사를 전달하는 부분)와 아리아를 구분하는 기존의 오페라 형식을 파괴하고 쉼 없이 음악이 이어지는 ‘무한선율’을 사용했다.
바그너 음악의 천재성과 파격성은 당대의 청중은 물론이고 다른 작곡가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동시대 및 후대의 많은 작곡가들이 바그너에게서 영향을 받았는데, 일부 학자들은 베르디의 말년작인 <오텔로>에서도 바그너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베르디안과 바그네리안 베르디와 바그너 애호가(또는 이들 작품의 전문 연주자)는 각각 베르디안, 바그네리안이라 불린다.
두 작곡가 중 더 폭넓게 사랑을 받은 쪽은 베르디이다.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 등의 베르디 오페라는 세계 어느 나라의 오페라극장에서도 핵심 레퍼토리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베르디는 푸치니와 더불어 오페라 공연의 대부분을 차지해왔다. 테너 박세원(서울대 오페라연구소장)씨는 “베르디 오페라는 아름답고 합리적”이라며 “쉬우면서 인간의 내면을 울리는 극적 힘을 지녔고, 발성 구조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작곡했기 때문에 성악가는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도 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독일어로 연주되는 바그너의 악극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국내에서 전막 공연된 적이 없었다. 무대 장치와 연기 없이 콘체르탄테 형식으로 전막 연주한 것도 지난해 서울시향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처음이었다.
바그너는 왜 베르디에 비해 자주 연주되지 않은 걸까. 연주상의 어려움이 주요한 이유로 꼽힌다. 격음이 많은 독일어는 모음이 많은 이탈리아어에 비해 노래하기가 어렵다. 또한 오케스트라가 아리아를 반주하는 이탈리아 오페라와 달리 바그너 악극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두텁게 쓰여 균형을 맞추려면 목에 무리가 갈 수 있다.
바그너의 대표작인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의 경우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이어지는 4부작을 모두 연주하는 데에 휴식시간을 제외한 공연시간만 약 16시간이나 소요된다. 후기낭만주의적 불협화성, 극의 철학적 함의를 이해하기 까다롭다는 점도 연주와 감상을 제한하는 요인이 됐다.
보통 바그너의 작품에는 전문적인 ‘바그너 가수’가 출연하는데 우리나라 성악가들은 주로 이탈리아에서 유학해 독일어 발성을 잘하는 ‘바그너 가수’가 드물다. 바그너 작품에서는 금관악기의 역할이 중요한데, 국내 오케스트라는 대부분 금관 파트가 취약하다는 것도 문제였다. 오는 10월 바그너의 <파르지팔> 전막 공연을 국내 초연하는 국립오페라단의 이승진 공연사업팀장은 “<파르지팔>을 위해 바그너 연주 경험이 많은 악장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혼(호른)과 트럼펫 주자 2명씩을 초빙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바그너는 연주만큼이나 감상하는 것도 쉽지 않다. 바그네리안들은 일단 발을 들이면 높은 예술성에 압도돼 헤어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일부는 바그너를 숭배한다고까지 표현한다. 조수철 한국바그너협회 회장은 “작곡가 자신이 말했듯 베토벤의 음악, 셰익스피어의 문학,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결합한 것이 바그너의 악극”이라며 “베르디가 경쾌하고 쉽게 친해질 수 있는 대상이라면 바그너는 끈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사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주)에이치앰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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