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록의 대모’ 패티 스미스. 사진 프라이빗커브 제공
서정민의 음악다방
2.2(토)
‘펑크록의 대모’ 패티 스미스 내한공연(사진)을 보러 갔다. 2009년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에 왔을 때 보지 못한 걸 몹시도 안타까워하던 차였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아이콘’이었던 그도 이제는 67살 ‘할머니’가 됐으니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깜짝 놀랐다. 좀 멀찍이서 보긴 했지만, 그는 30대 같아 보였다. 흰색 티셔츠 위에 검은 조끼와 재킷을 걸치고, 아래로는 청바지에 워커를 신고 있었다. 손에는 손가락 부분이 없는 니트 장갑을 꼈고, 허리춤에 감은 하얀 천의 끝자락이 허벅지께로 늘어져 있었다. 노래 두 곡을 부르더니 검은 비니 모자를 벗어 던졌다. 길고 찰랑이는 갈색 머리의 가르마 언저리가 하얗게 빛났다. 갈색으로 염색한 뒤 더 자라난 백발만이 그의 나이를 짐작게 했다. 노래할 때는 20대 같았다. 팔과 다리를 흔들며 흥겹게 춤출 땐 귀엽고 섹시했다. 욕설을 내뱉고, 침을 뱉고, 기타줄을 끊을 땐 정말로 멋있었다. ‘글로리아’를 부를 땐 사람들을 선동하는 혁명전사 같았고, ‘비코즈 더 나이트’를 부를 땐 거칠지만 달콤한 사랑의 전령사 같았다. ‘피서블 킹덤’을 들려줄 땐 핵폭탄에 반대한다는 뜻을 마치 시를 읊듯 간결하면서도 선명하게 전했다. 2층 객석에선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 공연할 록 밴드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멤버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적·장윤주·이하나 등 음악인이거나 음악을 좋아하는 연예인도 제법 눈에 띄었다. 록 밴드 허클베리핀의 보컬리스트 이소영은 “여성 로커로서 미래를 본 것 같다”며 흥분했고, 기타리스트 이기용은 “음악적으로 큰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나도 “요 몇년 새 본 공연 중 최고”라고 답해주었다.
2.3(일)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이 같은 장소에서 내한공연을 했다. 아일랜드 출신의 이 록 밴드는 지글거리는 기타 효과음을 극대화해 “노이즈(소음)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는, 이른바 ‘슈게이징’ 음악의 창시자다. 리더인 기타리스트 케빈 실즈 앞에는 기타 소리를 변형하는 이펙터들이 저잣거리 좌판처럼 깔려 있었고, 뒤에는 여러 대의 앰프가 성처럼 쌓여 있었다. 이들의 연주에선 멜로디가 큰 의미가 없었다. 남녀 두 보컬리스트가 부르는 노래는 거의 들리지 않았고, 지글거리는 기타, 둥둥거리는 베이스, 두들겨대는 드럼 소리만이 심장을 미칠 듯이 뛰게 만들었다. 초현실주의 추상화 같은 음악이랄까. 공연 막바지 15분간의 연주는 그야말로 ‘소리 폭탄’이었다. 주최 쪽이 미리 나눠준 귀마개를 끼는 관객도 있었으나, 나는 귀마개 없이 오롯이 견뎠다. 어느 순간 귀가 아니라 온몸으로 굉장한 소음을 느끼는 경지에 이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좀처럼 잊지 못할 기묘한 경험이었다. 밖에 나오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눈마저 음악처럼 느껴졌다.
2.5(화)
이 글을 쓰고 있는데, 한 독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중장년층 여성인 듯했는데, 내가 신문에 쓴 패티 스미스 인터뷰 기사를 읽고 공연장을 찾아갔다고 했다. 패티 스미스도 잘 몰랐고 록 음악을 잘 알지도 못하지만, 공연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며 내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공연장에서 패티 스미스 앨범을 사서 딸에게 가사를 해석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음악 기자 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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