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사실주의·인상파 화가들과 교유했던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1883년 작 <검은색 구성(노란색 반장화를 신은 여인)>
‘미국 미술 300년’ 전
독립~2차대전까지 시기별 소개
유럽 인상파 이상 색·터치 강렬
장대한 풍경·사실적 풍속화 주목
중앙박물관의 이례적 ‘파격전시’ 이 여인의 눈짓은 노골적인 유혹이다. 검은 코트로 몸 휘감은 스코틀랜드 귀족 부인은 손을 살짝 치켜들고 뒤를 흘깃 돌아본다. 그 돌아선 뒤태가 점차 빨라지는 선율처럼 관능미를 고조시킨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활동했던 미국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검은색 구성>은 신비스런 색감이 울렁거리는 작품이다. 경계를 알 수 없는 검은톤이 안개처럼 내려앉은 화폭 속에서 여인의 전신은 요염하게 빛난다. 5일 시작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박)의 기획특별전 ‘미국 미술 300년’에서 이 걸작을 18~20세기 미국 작가들의 그림·공예품들과 함께 볼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등 미국 주요 소장처 4곳의 회화·디자인·공예품 컬렉션 168점을 들여와 꾸린 전시다. 국내 처음 미국 미술 300년 역사를 풀어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박물관 쪽은 설명했다. 팝아트·미니멀로 상징되는 미국 현대미술은 지금도 세계미술의 중심이자, 미국 ‘소프트파워’의 일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20세기 초까지 미국 미술은 서양미술사 아류로만 폄하되어 왔다. 서구 미술의 적통을 유럽에서 넘겨받은 데 불과하다는 선입관이 뿌리 깊은 탓이다. 중박과 미국 기획자들이 함께 기획한 이 전시는 그래서 여러모로 다른 유럽 미술전과 다른 구석들이 보인다. 전시장은 여섯 영역이다. 18세기 독립 전후 시기와 19세기 초중반의 중서부 개척기, 19세기 말 대외 진출기와 20세기 초 근대 산업화·도시화 시기, 그리고 2차대전 뒤 세계 미술의 주도권을 잡는 시기까지의 주요 회화·공예 작품들을 망라했다. 특히 관객의 감성을 사로잡는 건, 유럽 인상파 작품 이상으로 색깔과 선의 터치가 강렬한 19세기 말 유럽파 미국 작가들이다. 메리 카사트, 존 싱어 사전트 등이 파리·지베르니 같은 프랑스 인상파의 성소에서 살면서 그렸던 ‘쨍한’ 풍경화들이 눈맛을 다시게 한다. 미국 미술의 뿌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18세기 독립을 전후한 시기부터 19세기 중엽까지 미국에서 성행한 초상화·풍속화·풍경화들을 주목할 수 있다. 들머리에 보이는 조지프 배저의 3살 아이 초상을 비롯해 초기 화단의 대표적 초상화가인 존 싱글턴 코플리, 미국 독립의 아버지 워싱턴의 이미지를 아이콘화한 렘브란트 필의 초상 등이 나왔다. 19세기 초중반까지 미국 중서부의 광활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삼아 그린 풍경화들은 유럽에서는 훨씬 전부터 유행한 바로크·낭만주의 스타일의 장대한 풍경 구도에 미국 특유의 대륙적 풍경을 융화시켜 색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펜실베이니아 저먼’으로 불리는 독일 이민자들의 단순 명쾌한 19세기 초 가구 디자인과 로코코 스타일을 대량 복제한 19세기말의 의자 등에서 미국 디자인의 생소한 역사를 읽어낼 수도 있다.
사회비판적 사실주의를 고집한 벤샨이나 사회 속 인간들의 투쟁적 이미지를 덩어리 같은 인간 군상의 묘사로 재현한 하트벤튼 같은 20세기 초 작가들의 작품은 도시 문화의 감수성이 짙게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전시장 말미에 몰려있는 잭슨 폴록, 앤디 워홀 등의 팝아트, 색면추상 작품들과 레이 임스의 미니멀한 의자 디자인은 다소 친숙하지만, 색면화가 로스코의 초기 추상 작업이나 폴록 부인 리 크래스너의 색면추상 등은 외국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작품들이다.
중박이 근현대미술까지 포괄한 서양미술 전시를 자체 기획한 건 ‘불편한 파격’이다. 대개 고고유물이나 전통미술 전시만 해왔던 60여년 관행을 깼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 전통 미술의 교환전 성격이었다가, 서양 근현대 미술을 공부한 김영나 관장의 ‘입김’에 따라 전시 성격이 바뀌었다는 후문이다. 일제 강점기 이래 미술관·박물관을 기형적으로 갈라 운영해온 현실에서 동서양과 전통·현대 경계를 넘나드는 이번 기획은 의욕적 실험으로 비친다. 그러나 김 관장의 후임 관장 때도 이런 파격이 중박에서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고고·한국 고미술사에 치중하는 중박의 내부 인식이나 전시 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보는 이들은 드물기 때문이다. 5월19일까지. (02)2077-90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제공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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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인상파 이상 색·터치 강렬
장대한 풍경·사실적 풍속화 주목
중앙박물관의 이례적 ‘파격전시’ 이 여인의 눈짓은 노골적인 유혹이다. 검은 코트로 몸 휘감은 스코틀랜드 귀족 부인은 손을 살짝 치켜들고 뒤를 흘깃 돌아본다. 그 돌아선 뒤태가 점차 빨라지는 선율처럼 관능미를 고조시킨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활동했던 미국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검은색 구성>은 신비스런 색감이 울렁거리는 작품이다. 경계를 알 수 없는 검은톤이 안개처럼 내려앉은 화폭 속에서 여인의 전신은 요염하게 빛난다. 5일 시작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박)의 기획특별전 ‘미국 미술 300년’에서 이 걸작을 18~20세기 미국 작가들의 그림·공예품들과 함께 볼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등 미국 주요 소장처 4곳의 회화·디자인·공예품 컬렉션 168점을 들여와 꾸린 전시다. 국내 처음 미국 미술 300년 역사를 풀어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박물관 쪽은 설명했다. 팝아트·미니멀로 상징되는 미국 현대미술은 지금도 세계미술의 중심이자, 미국 ‘소프트파워’의 일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20세기 초까지 미국 미술은 서양미술사 아류로만 폄하되어 왔다. 서구 미술의 적통을 유럽에서 넘겨받은 데 불과하다는 선입관이 뿌리 깊은 탓이다. 중박과 미국 기획자들이 함께 기획한 이 전시는 그래서 여러모로 다른 유럽 미술전과 다른 구석들이 보인다. 전시장은 여섯 영역이다. 18세기 독립 전후 시기와 19세기 초중반의 중서부 개척기, 19세기 말 대외 진출기와 20세기 초 근대 산업화·도시화 시기, 그리고 2차대전 뒤 세계 미술의 주도권을 잡는 시기까지의 주요 회화·공예 작품들을 망라했다. 특히 관객의 감성을 사로잡는 건, 유럽 인상파 작품 이상으로 색깔과 선의 터치가 강렬한 19세기 말 유럽파 미국 작가들이다. 메리 카사트, 존 싱어 사전트 등이 파리·지베르니 같은 프랑스 인상파의 성소에서 살면서 그렸던 ‘쨍한’ 풍경화들이 눈맛을 다시게 한다. 미국 미술의 뿌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18세기 독립을 전후한 시기부터 19세기 중엽까지 미국에서 성행한 초상화·풍속화·풍경화들을 주목할 수 있다. 들머리에 보이는 조지프 배저의 3살 아이 초상을 비롯해 초기 화단의 대표적 초상화가인 존 싱글턴 코플리, 미국 독립의 아버지 워싱턴의 이미지를 아이콘화한 렘브란트 필의 초상 등이 나왔다. 19세기 초중반까지 미국 중서부의 광활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삼아 그린 풍경화들은 유럽에서는 훨씬 전부터 유행한 바로크·낭만주의 스타일의 장대한 풍경 구도에 미국 특유의 대륙적 풍경을 융화시켜 색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펜실베이니아 저먼’으로 불리는 독일 이민자들의 단순 명쾌한 19세기 초 가구 디자인과 로코코 스타일을 대량 복제한 19세기말의 의자 등에서 미국 디자인의 생소한 역사를 읽어낼 수도 있다.
19세기 미국의 대표적 풍경화가인 윈슬로 호머의 1874년 작 <건전한 만남>(왼쪽), 알렌 스미스 주니어의 풍속화 <어린 수리공>(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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