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엔블루(위 사진) / 크라잉넛(아래)
서정민의 음악다방
지난달 씨엔블루(위 사진)와 인터뷰하면서 그들을 다시 보게 됐다. 기획사 주도로 만들어진 밴드인 그들은 스스로 결성하는 일반적인 밴드와 태생부터 다르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했다. 이전에 방송에서 녹음 반주(MR)를 틀고 악기를 연주하는 시늉(핸드싱크)을 한 것도 시인했다.
그렇게 약점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강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밴드들처럼 자작곡으로 활동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한 그들은 마침내 이번 미니앨범(EP) <리블루> 타이틀곡을 자작곡으로 내세웠다. 방송사 요구로 어쩔 수 없이 ‘핸드싱크’를 해야만 했던 한계를 벗어나 자비를 들여 방송에서도 100% 라이브 무대를 구현했다. 오해와 편견을 딛고 음악적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의지가 강하게 읽혔다. 이대로 잘 성장해나간다면, 밴드 음악이 유독 외면받는 가요 시장에서 밴드 음악의 전도사 구실을 잘해낼 수도 있겠다는 기대마저 생겼다.
그러던 중 크라잉넛(아래)과의 소송 사실이 알려졌다. 씨엔블루가 2010년 6월 위성·케이블 채널 <엠넷>의 음악 프로그램 <엠카운트다운>에서 크라잉넛의 노래 ‘필살 오프사이드’를 연주하는 무대를 선보였으나, 사실은 크라잉넛의 원곡을 틀고 연주하는 시늉만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해당 방송분이 일본 판매용으로 발매된 <씨엔블루 스페셜 디브이디>에도 담겼다.
이를 뒤늦게 안 크라잉넛은 저작권과 저작인접권을 침해했다며 지난 12일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씨엔블루 소속사는 “방송사가 녹음 반주를 준비하겠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다. 당시 갓 데뷔한 신인이라 방송사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며 책임을 방송사로 돌렸다. 또 “디브이디 발매도 방송사가 우리 모르게 진행한 것이며, 수익금도 모두 방송사가 가져갔다. 우리도 피해자다”라고 주장했다.
방송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신인의 처지는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분명 자신들이 직접 녹음한 반주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무대에 오른 건, 다른 이의 연주를 자신들 것처럼 속일 뜻이 있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행위다. 크라잉넛이 아닌 제3의 ‘유령 밴드’가 연주한 반주를 썼다 해도 음악인으로서 윤리를 저버린 행위에는 변함이 없다.
디브이디에 대한 책임 회피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크라잉넛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대지는 “초상권과 실연권을 가진 씨엔블루와의 동의와 계약 없이 프로필 사진집까지 포함된 디브이디를 발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디브이디를 제작·발매한 방송사는 씨엔블루 소속사에 거액의 투자 또는 선급계약을 한 사실이 알려져 있는 만큼 디브이디 발매는 이와 관련해 이뤄졌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상식적으로 이 주장에 더 수긍 간다.
씨엔블루 소속사는 15일 자사 누리집에 사과문을 올렸다. 일부 연예매체는 “대인배 씨엔블루가 피해자인데도 사과했다”고 추어올렸다. 하지만 크라잉넛은 이런 사실을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 크라잉넛 쪽은 “진정성 없는 사과”라며 소송을 거둬들일 뜻이 없음을 분명히했다.
씨엔블루에게 건의한다. 진정 잘못을 인정한다면 크라잉넛을 만나 진심으로 사과하라. 뼈아픈 실수와 진솔한 반성이 더욱 진정성 있는 밴드로 거듭나는 데 자양분이 될 것이다. 지난번 인터뷰에서 밝힌 바람처럼 “백발이 될 때까지 오래 밴드를 하고 싶다”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약점을 인정하면 강점이 보이는 법이다.
방송사에도 제안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제작 편의를 들어 밴드에게도 녹음 반주를 강요하는 풍토를 바꾸자. 밴드 연주자들은 백댄서가 아니다.
서정민 문화부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