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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심증과 물증 사이 아슬아슬한 심리게임

등록 2013-02-21 19:57수정 2013-02-22 15:35

연극 ‘죄와 벌’
연극 ‘죄와 벌’
리뷰 l 연극 ‘죄와 벌’
무대 전체 감싼 검고 굵은 거미줄
검사와 살인자 사이 긴장감 높여

아무리 극악한 ‘공공의 적’이라고 할지라도 그를 죽일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가?

러시아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이 던지는 질문이다. 20일 저녁 서울 대학로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 <더 게임-죄와 벌>(극작 김태현, 연출 김원석)은 이 화두를 매개로 삼아 인간성 회복을 꿈꾸었던 대문호의 작품 내용 중 일부를 떼어내어 살인자와 검사의 치밀한 심리게임으로 풀어놓았다.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 악독한 전당포 주인 ‘알료나’와 여동생 ‘리자베타’가 도끼에 찍혀 살해된 채 발견된다. 사건을 맡은 노회한 검사 ‘포르피리’(남명렬)는 정의감에 사로잡혀 있는 법학과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오경태)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정확한 물증은 없다. 단지 라스콜리니코프가 발표한 논문 <범죄에 관하여>를 심증으로 삼는다. 그는 라스콜리니코프가 그 논문에서 “세상에는 솔로몬이나 무함마드(마호메트), 나폴레옹처럼 어떤 특별한 부류의 비범한 인간들이 있으며,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양심에 따라 모든 장애를 제거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는 주장을 근거로 삼아 범인임을 확신한다. 그는 라스콜리니코프와의 ‘평범함’과 ‘비범함’ 논쟁을 통해 범죄를 밝혀내려 한다. 그는 거미줄을 쳐놓고 라스콜리니코프가 걸려들기를 기다린다. 그가 결코 ‘비범한 인간’이 아니라 ‘평범한 살인자’라는 것을 자백하라고 몰아붙인다. ‘심증’과 ‘물증’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심리게임이 벌어지고 라스콜리니코프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거미줄에 걸려든다.

극장 전체를 굵고 검은 밧줄로 거미줄처럼 옭아맨 무대, 꿈속 장면과 거미집으로 활용되는 도끼 모양의 지하무대 등 공간 연출이 인상 깊다. 무대를 온통 옭아맨 거미줄은 심리게임에 진 패배자의 숨통을 죄는 올가미로 비친다. 거미줄은 검사 포르피리의 덫일 수 있고 라스콜리니코프의 죄의식, 양심의 가책으로 읽을 수도 있다.

남명렬·오경태씨의 열연과 이정훈씨의 거미인간 퍼포먼스가 돋보인다. 그러나 공연 말미 재판 장면에서 극이 느닷없이 코미디로 전환되면서 점점 고조되던 극적 긴장감과 밀도가 한순간 허물어지는 아쉬움을 남긴다. 28일까지. (02)3673-2003.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명품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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