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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음표 하나하나 집중한 지휘자 하이팅크

등록 2013-03-03 20:23

런던 심포니. 빈체로 제공
런던 심포니. 빈체로 제공
리뷰 l 런던 심포니 내한공연
선 굵은 게르기예프 지휘와 달리
주관적 해석보다 음악 본질 좇아
피아니스트 피르스와 최적의 협연

연주자의 몸을 빌려 ‘음악이 스스로 말하는 순간’은, 청중이 연주회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경이로움의 극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월28일과 3월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르나르트 하이팅크(84)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이 비현실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특히 이틀간 연주의 대미를 장식한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은 음악에 내재해 있던 거대한 우주와 신성의 현현(顯現)이었다.

하이팅크는 자신의 해석을 내세우거나 강하게 이끌어 가려 하지 않고, 오케스트라 안으로 스며들어 일체화했다. 그리고 작곡가가 창조한 음표와 쉼표 하나하나를 경배하듯 섬세하게 연주했다. 런던 심포니는 수석지휘자인 게르기예프의 지휘하에서 선이 굵고 건축적인 소리를 들려줄 때와 전혀 다른 악단처럼 느껴졌다.

첫째 날 연주한 브리튼의 <네 개의 바다> 간주곡은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에서 막과 막 사이의 간주곡을 발췌해 엮은 것으로, 현대적인 오케스트레이션(관현악 작곡기법)의 신선한 음향을 만끽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이 중 ‘일요일 아침’의 몽환적인 혼 앙상블과 ‘폭풍’에서 으르렁대는 팀파니와 금관 앙상블은 압도적이었다. 중간 휴식 뒤 이어진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은 활기 넘치면서도 우아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둘째 날,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노바크 판)은 런던 심포니와 하이팅크의 조합이 만들어낼 수 있는 궁극의 레퍼토리였다. 안개에 휩싸인 듯한 1악장의 ‘브루크너 개시’에서 많은 지휘자들이 신비감을 과장하곤 하지만, 하이팅크는 주어진 악상을 담담히 구현하며 차분하게 음향을 쌓아나갔다. 그는 고르고 풍성하게 채워진 현 파트의 트레몰로(특정한 음을 빠르고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 위에 목관과 금관을 얹어 거대한 음향 덩어리를 완성했다. 그 음향 덩어리는 육중했지만 어둡지 않고, 충만하며 순결했다. 단호하게 내리긋는 하행 주제와 부드러운 상행 주제의 대립 뒤에 도달한 3악장은 초월과 구원의 노래였다. 3악장 맨 마지막에 이르자, 구름이 걷히면서 천상의 눈부신 빛이 비추는 듯했다. 이 곡을 여러 차례 실연으로 감상했던 이들조차 가치를 새삼 재발견할 만한 호연이었다.

이번 내한 공연에는 포르투갈 출신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르스(69)도 협연자로서 함께 했다. 인위적인 표현이나 자의적인 해석을 거부하고 음악의 본질에 천착해온 피르스는 하이팅크에게 최적의 짝이었다. 피르스는 첫째 날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7번>과 둘째 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투명하게 정화된 음색을 펼쳐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 종지에서 피르스가 댐퍼 페달로 피아노의 현을 완전히 개방하고 봄비처럼 촉촉하게 공연장 안의 공기를 적시는 장면은 브루크너 교향곡과는 또다른 모습의 천국이었다.

이번에 하이팅크와 피르스가 한국을 재방문하기까지 각각 36년과 17년이 걸렸다. 이제 만 84살, 69살의 고령인 이들을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선사한 두번의 고결한 무대는 앞으로도 꾸준히 회자될 것이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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