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백년, 바람의 동료들’
2010년 8월29일 저녁, 일본 오사카의 작은 조선인 마을 ‘이카이노’의 한 술집에서 파티가 벌어진다. 이날은 이 술집 ‘바람 따라 사람 따라’가 개업 20돌을 맞는 날이자 ‘한일 병합’ 100돌이기도 하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옛 추억을 나누다 민족과 국적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면서 가슴 밑바닥에 억눌려 있던 울분이 폭발한다. 울고 웃는 동안 가수 ‘영태’가 이들을 위해 노래 ‘백년절’을 짓는다. “백년 지나면 강산이 변하네/ 대지는 갈라지고 끊겨 버리고/ 대대손손 삼대가 살아왔건만/ 조국을 갈망하는 허무함이여….”
재일동포 연극인 김수진(59)씨가 이끄는 극단 ‘신주쿠양산박’이 재일동포 100년 역사와 치열했던 삶을 그린 연극 <백년, 바람의 동료들>을 9~16일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Ⅲ 무대에 올린다. 2011년 두산아트센터가 한국 사회가 구획 짓는 경계에 대한 인식과 성찰의 지평을 넓히고자 기획한 ‘경계인 시리즈’의 하나로 신주쿠양산박 극단이 공연해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지난해에는 일본 도쿄와 오사카 순회공연으로 재일동포 사회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극작가 겸 음악가인 조박 작가와 이 극단 대표인 김수진 연출가가 남북한과 일본 사이에서 ‘자이니치’(재일동포)라는 경계인으로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한 작품이다.
극이 진행되면 일본에선 ‘조센진’으로, 한국에선 ‘반쪽발이’로 규정당하며 살아온 ‘자이니치’의 역사가 무대 위에 쏟아진다. 1970년대 서울에 유학갔다가 북한의 남파 간첩으로 몰려 고문을 받아 몸이 망가진 ‘동희’, 제주 4·3항쟁 때 가족과 친척이 몰살당한 할아버지를 둔 ‘원일’, 말기 암 진단을 받아 죽기 전에 가족을 위해 일본 귀화를 선택한 ‘관수’의 사연이 드러난다. 극중 술집 ‘바람 따라 사람 따라’의 주인 ‘박수진’은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인) 이카이노라는 지명은 (일본인들 사이에선) 옛날에 사라졌지만, 우리가 이카이노라고 부르는 한, 누가 뭐래도 이카이노다. 우리에게는 남한이나 북조선, 일본이나 한반도 조국도 이카이노에 비하면 아주 작디작다”고 말한다.
조박 작가는 “경계에 사는 경계인이야말로 동서남북, 좌우상하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일’이라는 정체성을 넘어 ‘사람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밝혔다.
일본 배우와 재일동포 배우들이 일본어로 공연하며, 관객들의 언어장벽을 낮추기 위해 음악과 영상을 적극 활용했다. 한복과 기모노 차림의 배우들이 한국과 일본 노래를 함께 부른다. 1544-1555.
정상영 기자
사진 신주쿠양산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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