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56)씨
한·일 연극계 주목 받는 연출가 정의신
재일동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56)씨는 한국과 일본 연극계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이다.
2008년 5월 재일한국인 가족의 삶과 애환을 담아낸 한·일 합작 연극 <야키니쿠 드래곤-용길이네 곱창집>으로 한국과 일본 연극계의 이름 있는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었다. 지난해 6월에는 전라도의 한 섬을 무대로 하여 이발소를 운영하는 홍길네 가족과 섬 주둔 일본군 사이의 애증을 다룬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로 한국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다섯달 뒤인 11월엔 한·일 합작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이 일본 공연 40회 전회 매진을 기록했고 올해 1~2월 한국 공연에서도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그 비결이 궁금했다. 지난 5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정의신씨를 만났다.
“시대의 변화, 역사의 흐름 속에 휩쓸려 버린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 또 무언가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해주려고 합니다. 삶에는 행복도 있고 불행도 있지만 그래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어떻게든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내 연극의 메시지에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고 인기 비결을 에둘러 말했다.
그의 작품에는 일본에서 ‘자이니치’라고 불리는 재일동포뿐만 아니라 장애인, 동성애자 등 한국과 일본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소수자’(그는 ‘마이너리티’라고 칭한다)가 늘 등장한다. 그는 “저나 제 부모가 자이니치로서 일본의 빈민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마이너리티에 익숙하다”고 했다.
두 나라의 경계인으로 살아온 그의 이력처럼, 그의 작품 속에는 한·일 두 나라의 정서와 감정, 생각과 문화, 역사와 배경이 함께 녹아 있다. 그렇기에 두 나라의 관객들은 그의 작품에서 익숙한 느낌과 이국적인 인상을 동시에 받는다.
그는 올해도 두 나라를 오가며 바쁜 작업을 벌인다. 한국에서는 이달 8~24일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연극 <푸른배 이야기>를 올린다. 인천의 한 어촌 사람들이 신도시 개발 바람에 휩쓸려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모습을 담담하게 펼쳐놓는 작품이다. 6월에는 그가 대본을 쓴 <아시아 온천>(연출 손진책)을 일본 신국립극장과 한국 예술의전당 합작으로 선보인다. 어느 섬에 온천이 발견되면서 선조의 땅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남자와 온천을 개발해 돈을 벌려는 외지인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일본에서는 4월에 일본의 잡귀를 소재로 한 신작 연극 <사바케>를 발표할 예정이다. 7월에는 한·일 두 나라에서 호평받았던 연극 <야키니쿠 드래곤>으로 영화감독으로도 데뷔한다. 2016년에는 일본 도쿄의 신국립극장이 ‘정의신 시리즈’를 기획해 그의 대표작 <봄이 오면 산과 들에>와 <야키니쿠 드래곤>, <파마야 스미레>를 공연할 예정이다.
“한국과 일본 관객들은 기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굳이 찾는다면 웃음 코드가 약간 다르다고 할까요. 또 한국 관객들은 좀더 반응이 직접적이고 적극적이며 솔직해요. 그래서 한국분들의 반응을 보면 훨씬 즐겁습니다. ”
그는 지난달 19일 아버지를 여의었다. 충남 논산이 고향인 그의 아버지는 일제 시절 15살에 일본으로 혼자 건너가 독학으로 대학에 들어갔으나 2학년 때 징병으로 끌려갔다. 전쟁이 끝난 뒤 고물상을 하며 다섯 아들을 키워냈다. 그는 “아버지는 힘든 시기에도 우리 다섯 형제를 다 대학 공부까지 마치게 해주셨다. 훌륭하신 분이셨다. 연극 <푸른배 이야기> 준비로 장례식 아침에 가서 얼굴만 비추고 와서 죄스럽다.” 그는 13일 일본으로 건너가 희메지시에 있는 아버지 묘소를 찾을 예정이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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