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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무대와 영원히 이별한 ‘연극쟁이’ 강태기…‘굿바이 앨런’

등록 2013-03-13 19:56수정 2013-03-13 19:56

13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연극배우 강태기의 영정이 문상객들을 맞고 있다.  
 김포/사진공동취재단
13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연극배우 강태기의 영정이 문상객들을 맞고 있다. 김포/사진공동취재단
1975년 ‘에쿠우스’ 앨런 역으로
‘젊은 천재 배우’ 평단 극찬받아
영화·드라마로 활동 넓혔지만
운명처럼 여긴 연극이 삶의 1순위

“선배는 소극장 연극의 산증인…
무대에 더 서야 했는데 안타까워”
“배우는 순수하고 진실해야 한다. 나는 나의 삶을 참으로 진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은 연극배우다.”

12일, 63살의 나이로 이승의 무대에서 저승의 무대로 떠난 연극배우 강태기가 생전에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영화, 티브이 드라마, 연극을 망라해 500여 작품에 출연하고 한국연극배우협회장 같은 다양한 활동도 펼쳤지만, 그는 평생토록 자신이 연극배우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무엇보다 강태기는 영원한 ‘앨런’으로 기억된다.

동양방송(TBC)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연극에 뛰어든 그는 1975년 9월15일 극단 실험극장의 소극장 개막공연으로 초연한 연극 <에쿠우스>를 통해 단박에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살인과 섹스, 전라 연기가 화제가 되었지만 사실 <에쿠우스>는 억압된 현실과 원초적 욕망 사이에 분열된 인간의 삶에 대한 절규가 넘쳐나는 작품이었다. 하룻밤 새 말 6마리의 눈을 찌른 소년 앨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피터 섀퍼의 이 작품에서, 곱슬머리와 가느다란 몸매에 예민한 눈길을 지닌 그는 마치 고대 그리스 소년을 연상케 했다. 당시 앨런의 아버지 프랭크 역으로 함께 무대에 섰던 이한승(극단 실험극장 대표)씨는 “1975년 4월 제대하고 극단에 복귀한 강씨를 보고 당시 극단 대표인 고 김동훈 선생이 ‘바로 이 사람’이라며 전격 기용했다”고 말했다.

강태기가 1975년 9월 연극 <에쿠우스>에서 앨런 역을 열연하고 있다. 극단 실험극장 제공
강태기가 1975년 9월 연극 <에쿠우스>에서 앨런 역을 열연하고 있다. 극단 실험극장 제공
<에쿠우스>는 강태기에게 부와 명예, 사랑을 선사했다. 평단으로부턴 “젊은 천재 연극배우의 등장”이라는 극찬을 받았고 여배우 정혜나씨를 그 무대에서 만나 결혼하게 됐다. 76년, 77년, 80년, 87년 잇따라 앨런 역을 맡았다.

<에쿠우스>는 그에게만 의미있는 것이 아니었다. 국내 최초 관객 1만명 돌파, 국내 최초 6개월 연속 공연, 국내 최초 예매제 도입 등 기록을 쏟아내며 소극장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1975년 폭발적 인기를 모으던 작품이 ‘벗는 장면’이 문제가 되며 ‘소방시설 미비’라는 명목으로 공연 중지 통보를 받았던 것은, 1970년대 박정희 시대 한국 사회의 씁쓸한 풍경으로 기억된다.

앨런 역은 송승환, 최재성, 최민식, 조재현 등이 거쳐간 스타의 산실로도 유명하다. 1981년 앨런 역을 맡았던 송승환(56·난타 제작자)씨는 “배우를 내 평생의 직업으로 삼아야 할지를 고민하던 20대 초반 강태기 선배가 하는 <에쿠우스>를 보고 ‘배우로 평생을 사는 것도 참 가치있는 일이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밝힌 적 있다. 연출가 송미숙씨는 “많은 배우들이 앨런을 했지만 깔끔한 대사와 열정적인 연기는 누구도 그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강태기는 티브이와 영화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도 한시도 연극의 열망을 놓지 않았다. 특히 2004년 <삼류배우>, 2008년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보여준 뛰어난 연기는 ‘강태기의 연극 부활’을 알렸다. 지난해 연극 <눈꽃편지>는 그의 유작이 되었다. 그는 2008년 한 인터뷰에서 “우리네 작업이 그렇다. 돈과 명예, 등식 같기도 하지만 한몸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돈을 쫓았으면 지금보다 윤택한 생활을 할 수도 있겠지만, 후회는 안 한다”고 말했다.

그의 급작스러운 부고 뒤 지인으로부터 몇년 전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 등이 뒤늦게 알려지며 사람들의 안타까움은 더해가고 있다. 디자이너 이상봉씨는 12일 트위터에 “강태기 선배는 그 시절 후배들의 우상이었다”고 썼다. 1991년 앨런 역을 맡았던 배우 조재현(48·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씨도 “한국 소극장 연극의 산증인 같은 배우였다. 더 연극무대에 서셔야 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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